19. 당주동
세종문화회관 뒷쪽 먹자골목 쪽이다. 당주동은 1914년 4월 경성부제 실시하면서 서울의 동리를 폐합 조정할 때에 종래의 봉상사전(奉常司前), 내섬동(內贍洞), 남문동(南門洞), 창례동(昌禮洞), 북문동(北門洞), 대창동(大昌洞), 훈조동(燻造洞), 야주현(夜珠峴), 당피동(唐皮洞)의 각 일부를 합한 동인데 종래의 동명 중 당피동의 「당」자와 야주현의 「주」자를 따서 붙인 동명이다. 당주동을 이룬 여러 개의 자연부락의 유래를 보면 내섬시가 있어 붙여진 내섬동은 내섬삿골이라고도 하며, 봉상사 앞에 있는 마을은 봉상사전동 혹은 봉상사 앞골이라 했다. 남문동은 봉상사의 남문이 있으므로 붙여진 동명으로 남문골이라 했고, 북문이 있는 곳을 북문골 혹은 북문동이라 하며 내수동과의 경계에 걸쳐 있다. 대창동과 훈조동에..
16. 내자동
경복궁역, 서울지방경찰청, 세종마을 먹자골목을 아우르는 동네이다. 내자동의 동명이 유래된 내자사(內資寺)는 호조(戶曹)소속 관서이다. 고려 때부터 있어왔던 의성고(義成庫)를 태종 3년(1403)에 내자시로 고쳤는데 궁내에 미(米), 면(麵), 주(酒), 장(醬), 유(油), 견(絹), 소(蔬), 과(果), 내연(內宴), 직조(織造)등의 공급을 담당하였다. 『고려사』에는 내자시나 의성고가 보이지 않는 대신 내방고(內房庫)가 있다. 충선왕(忠宣王) 원년(1309)에 운진창(雲臻倉)을 부흥창(富興倉)에 합하고 의성창(義成倉)으로 개칭하였으며 충숙왕(忠肅王) 2년에는 내방고로 고쳤다. 여기에 보이는 의성창 또는 내방고가 내자시의 전신인 의성고와 같은 관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내자시의 위치에 대하여는 『동국여지..
15. 내수동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경복궁역 사이의 동네이다. 내수동의 동명은 옛날 내수사(內需司)라는 관청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1914년에 동명을 개정할 때에는 영빈동(英嬪洞), 누정동(樓井洞), 승전교(承傳橋), 내수사전동(內需司前洞), 내수사와 사직동(社稷洞), 박정동(朴井洞), 종교(宗橋), 대창동(大昌洞), 북문동(北門洞)의 각 일부를 합하여 수창동(需昌洞)으로 이름하였다가 뒤에 내수동으로 고쳤다. 옛날에는 이곳이 서부 인달방(仁達坊) 관내에 속하였다. 내수사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궁내에서 쓰는 미곡, 포백(布帛), 잡물과 노비 등의 수요를 공급하는 것을 임무로 하였다. 궁중의 수용(需用)도 물론 정상적인 경용(經用)은 호조나 탁지부에서 공급하였던 만큼, 본사(本司)에서 공급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