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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Explorer/1.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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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훈정동 종묘이다. 훈정동의 동명은 이곳이 원래 더운 우물물이었으므로 이를 한자로 옮긴데서 유래되었다. 훈정동의 동명은 종묘 앞 시민광장 안의 훈정동 66-5번지에 있는 더운 우물에서 비롯되었다. 어수(御水)우물, 한우물도 불리는 이 우물은 여름에는 물맛이 얼음처럼 차고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오르고 따스할 뿐만 아니라 달작지근하여 종묘대제(宗廟大祭)때에는 반드시 이 물을 길어서 사용했고 임금의 어수(御水)로 사용했기 때문에 명칭이 유래되었다. 크다는 뜻과 많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우물」에서 「한우물」혹은 대정(大井)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는데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수량이 고갈되지 않고 홍수가 져도 넘쳐나는 법이 없이 일정한 수위를 지니고 잇는 것이 이 우물의 특징이다. 이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을 훈정동·..
89. 효제동 대학로에서 종로5가 방향 지역이다. 효제동의 동명유래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곳에 부왕(父王)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하던 효종대왕의 잠저(어의궁)가 있었던 데서 연유하며 또 하나는 이 동의 윗쪽에는 성균관이 있고, 인접한 종로6가에 4부학당의 하나인 동학(東學)이 위치하여 유학(儒學)이 성하던 곳이라 해서 유학의 대강인 인의, 예지, 효제, 충신 등을 이 인근 일대의 동명으로 삼으므로써 효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효제동에는 오랜 옛날부터 불려져 오는 옛 자연부락의 명칭과 지형지물에 관한 명칭들이 다음과 같이 전해져오고 있다. 우물가에 회화나무가 있기 때문에 회화우물·홰우물·괴천(槐泉)이라 불렀고 인근의 마을은 회화우물골·괴천동(槐川洞)으로 불렀다. 종로5·6가 동사무소가 있는..
88. 효자동 청와대 옆 청운효자주민센터 남쪽지역이다. 효자동의 동명은 이곳에 있던 원래의 자연부락 효곡(孝谷)에서 유래되었다. 효곡은 고종31년 갑오개혁때에도 동명중의 하나로 보이는 것으로서 그 유래가 오래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동명은 원래 이곳에 임천조씨(林川趙氏)의 쌍효자가 나서 유명하였기 때문에 「쌍효잣골」「효잣골」로 불러온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쌍효자란 조원(趙瑗)의 아들 희정(希正)과 희철(希哲) 형제를 말함이며 나라에서 이들에게 내린 정문(旌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14년 이래로 다른 동리들의 일부까지 포함하여 「효자동」으로 불러오게 되었으며 일부에서는 효에 대한 새로운 일식을 이야기하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윤리의 관념이 많이 변천된 오늘에 있어서도 효자동의 동명은 새삼 옛날의 윤리관과 가..
87. 화동 삼청동 동편 북촌이다. 화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던 화개동(花開洞)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화개동은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있었다는 설과 함께 화유(花 ), 화과(花果)의 일을 담당하는 장원서(掌苑署)가 화동 23번지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꽃을 기르고 있으므로 글자 그대로 화개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줄여서 화동(花洞)으로도 불렀다. 화개동은 화기동(火器洞)이었던 것이 변하여 화개동으로 되었다고도 하는데 원래 이곳에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있었기 때문에 화기동이 되다가 음이 비슷한 화개동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화동을 이룬 자연부락으로 동곡(東谷) 혹은 동골이라 부르는 곳은 가회동과 연접되는 정독도서관 동남쪽이며 붉은 잿골은 화동, 안국동, 재동에 걸친 마을로 붉은 재가 있어서 이를 한자로 옮겨 ..
86. 홍파동 서대문에서 독립문 가는 교남동 동쪽지역이다. 홍파동의 동명은 홍문동과 파발동의 첫글자를 각각 따서 붙여졌다. 홍파동은 천변동(川邊洞)·어수정동(御水井洞)·신촌동(新村洞)·월암동(月岩洞)·파발동(把撥洞)·홍문동(紅門洞)의 자연부락이 합쳐져 형성되었는데, 천변동은 개천께라고도 하며 교남동과의 접경부분이 된다. 교남동과 홍파동의 경계지점에 작은 내가 흘렀으므로 내의 좌우측에 있는 부락을 천변동이라 하였다. 어수정동은 어수우물골이라고도 한다. 행촌동 대신중고등학교 부근 지금의 사직로가 지나는 남쪽 끝에 어수우물이 있었으므로 그 마을을 어수우물골이라 하였다. 신촌동은 교북동 11번지 일대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 연변에 있는 홍파동 56번지 일대에 새말 혹은 신촌동이라 하였다. 월암동은 송..
85. 홍지동 홍은동과 부암동 사이 지역이다. 홍지동의 동명은 탕춘대성(蕩春臺城)의 관문인 홍지문(弘智門)에서 비롯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제정된 동명에 의하면 상평방(常平坊 :城外) 경리청계(經理廳契) 안에 홍지문내동(弘智門內洞), 삼지동(三芝洞), 남문동(南門洞)으로 되었다. 일제하 1914년 4월 1일 경성부 축소계획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에 편입되었을 때 삼지동, 남문동을 병합시켜 홍지리라 하였고 1936년 4월 1일 경성부 확장실시에 따라 경성부관할로 편입될 때 홍지정(弘智町)으로 되었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동명의 일소에 따라 홍지동으로 되었다. 홍지동은 동명이 유래된 홍지문을 중심으로 마을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왔는데 홍지문 안쪽과 가까운 곳에 형성된 마을을 홍지문내동 혹은 줄여서 내동..
84. 혜화동 혜화동 동성고와 서울과학고 사이 지역이다. 혜화동은 성북구 삼선동과의 경계지점이 되는 고개에 도성(都城) 8문(門) 가운데 하나인 혜화문(惠化門)의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혜화동으로 편입된 옛 지명들은 오랜 옛날부터 불리어 온 자연부락 명칭들로 혜화동의 옛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상백동(上栢洞)은 혜화동과 동숭동에 걸쳐 있던 마을이다. 태종 때 박은(朴 )이 낙산(駱山)아래 이 곳에 살면서 잣나무를 심고 백림정(栢林亭)을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인데 웃잣골로도 불렀다. 상토교(上土橋)는 혜화동과 명륜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혜화동 132번지에 있던 흙다리 위쪽에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웃흙다릿골, 줄여서 웃흙다리로도 부른다. 송동(宋洞)은 혜화동과 명륜1가, 명륜2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효종 ..
83. 행촌동 독립문 동편지역이다. 행촌동은 1914년 동명 개정에 따라 서부 반송방(盤松坊)의 은행동(銀杏洞)과 신촌동(新村洞)의 마을을 합쳐 동명을 붙인데서 유래되었다. 행촌동은 조선시대의 자연부락이던 곡정동(谷井洞)·어수정동(御水井洞)·신촌동(新村洞)·은행동(銀杏洞)이 모여 형성된 동인 만큼 자연부락 이름에 얽혀있는 유래가 많다. 곡정동은 골우물골이라고도 하는데 어수우물골 아래에 있다. 골짜기에 우물이 있으므로 해서 붙여졌다. 인왕산 자락을 타고 내려와 형성되었으므로 골짜기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독립문 가까이로 뻗어 내려간 골짜기 끝 행촌동 209번지에 우물이 있음으로 해서 일대의 마을을 골우물골이라 하였다. 신촌동은 새말이라고도 하며 독립문로로 편입된 지역과 교북동 1번지 및 골우물골과 연접된 지역을 말하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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