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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Explorer/1.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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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청진동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 지역이다. 청진동은 이곳은 조선시대 한성부 징청방(澄淸坊)과 수진방(壽進坊)의 일부였던 관계로 방명에서 한자씩 따온데서 유래되었다. 청진동의 동명이 유래된 수진방에는 수진궁이 있었다. 수진궁은 조선 예종의 둘째아들인 제안대군 현( )의 사저로 그 뒤 어려서 죽은 대군(大君), 왕자, 공주, 옹주 및 자손이 없는 후궁들의 제사를 지내는 궁(宮)이 되었다. 지금의 수송동 삼양식품(전 종로국민학교) 동북방과 종로구청의 일부에 해당된다. 또 징청방의 징청은 난세를 다스려 밝게 한다는 뜻이다. 청진동의 자연부락 명칭 및 지명은 다음과 같다. 금부뒷골은 공평동과 청진동을 경계로 하는 길의 청진동 쪽에 있는 마을로 금부후동(禁府後洞)이라고도 하며 공평동 94번지에 의금부가 있었기 때문에 의금부..
73. 청운동 청와대 북서쪽 지역으로 자하문터널 가기 직전이다. 청운동의 동명은 이곳에 원래 있던 청풍계(淸風溪)와 백운동(白雲洞)의 첫글자를 따온 데서 유래된다. 동명이 유래된 청풍계와 백운동은 도성 북쪽 인왕산과 백악사이 자하문(창의문)고개의 남쪽에 있다. 이곳은 깊숙하고 그윽한 계곡에 맑은 수석이 청풍과 함꼐 항상 백운으로 덮여 있었다. 백운동에는 조선 초기 중추부 이의념(李義念)이 살자 그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성의 서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백운동은 산도 높지 않고 골짜기도 그렇게 깊지 않지만 푸른 송림과 등라덩굴 사이로 맑은 냇물이 소리내어 흐르고 맑은 하늘에는 아침 저녁으로 점점이 떠있는 흰구름이 아름다워 주변의 경관과 함께 어우러지므로 옛날부터..
72. 창신3동 창신역과 한성대, 낙산공원 사이 지역이다. 창신동의 동명은 조선초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방(坊) 가운데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의 글자를 따서 1914년 동명 개정 때 제정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개창하고 한성부의 행정관할 구역을 제정할 때부터 있어왔던 창신동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연부락의 이름도 많다. 창신3동(Changsin3(i)-dong) 숭인동의 청룡사(靑龍寺)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은 자줏굴, 자지동(紫芝洞)이라 불렀다. 자줏굴 돌산 중턱에는 청룡정(靑龍亭)이 있었다. 사정(射亭)으로 장충단의 석호정(石虎亭), 마포의 화수정(華水亭), 가회동의 일가정(一可亭), 천연동의 서호정(西虎亭)과 함께 서촌오처사정(西村五處射亭)의 하나로 이름이 났던 곳이다. 청룡정의 동쪽..
71. 창신2동 동대문역과 동묘역, 창신역 사이의 지역이다. 창신동의 동명은 조선초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방(坊) 가운데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의 글자를 따서 1914년 동명 개정 때 제정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개창하고 한성부의 행정관할 구역을 제정할 때부터 있어왔던 창신동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연부락의 이름도 많다. 창신2동(Changsin2(i)-dong) 창신2동 649번지에는 한우물이 있었는데 우물의 규모가 크고 수량도 많기 때문에 큰우물, 대정동(大井洞)이라 하였다. 창신2동 입구에서 약 300m정도 들어간 지점을 홍숫골 혹은 홍수동(紅樹洞)이라 부르는데 복숭아와 앵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으므로 마을 전체가 온통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로만 싸여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벽에 홍수..
70. 창신1동 동대문역과 동묘역 사이 지역이다. 창신동의 동명은 조선초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방(坊) 가운데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의 글자를 따서 1914년 동명 개정 때 제정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개창하고 한성부의 행정관할 구역을 제정할 때부터 있어왔던 창신동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연부락의 이름도 많다. 창신1동(Changsin1(il)-dong) 지금의 청계천이 완전 복개되어 청계천으로 모여드는 지천(支川)까지도 없어졌지만 창신1동 3.1아파트 1동 앞에는 복차천(伏車川)이 흘렀고 이 개천에 놓인 다리를 복차교라 하였다. 복차교는 복차다리 혹은 복초다리라고도 불렀으며 부근의 창신1동 531번지 일대를 복초다릿굴, 복차교동, 복차동이라 하였다. 이스턴호텔이 있는 부근의 마을은 도성(都城)..
69. 창성동 경복궁 서쪽 지역이다. 창성동의 동명은 갑오개혁 때 북서 순화방관하에 사재감상패계 창성동(昌成洞)의 '성(城)'자와 순화방내 사재감하패계의 동명중에 장성동(長城洞)이라는 동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장성' 또는 '창성'으로 이름하는 옛날의 고성지(古城址)라고 있는 데에서 온 것은 아닌가 생각되나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지리서 중에서 그러한 고성의 유지(遺址)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성지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고 「청송당(聽松堂)」이 음이 서로 비슷한 관계로 하여 창성동(昌城洞)으로 변하고 성과의 관련이 없는 창성(昌城)이 무의미하는 점에서 다시 글자의 음이 같은 '성(成)'자로 바꾸어서 「창성동(昌成洞)」으로 아화(雅化)되어 유래된 것 같다. 창성동을 이루고 있는 ..
68. 중학동 동십자각 건너편쪽이다. 중학동은 88번지 일대에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으로 4부학당의 하나인 중부학당(中部學堂)이 있었으므로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중학(中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중학동은 삼청동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중학천과 백운동에서 시작하여 경복궁 앞으로 흘러내린 두 물이 마주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중학교(中學橋)는 중학동 88번지 서쪽에 있던 다리로 중학 앞에 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중학교중학다리로 불렀으며 근방에 형성된 마을은 중학교동(中學橋洞)·중학다릿골·중학동이라 하였다. 중학동과 세종로에 걸쳐있는 마을은 수문동(水門洞)·수문골이라 불렀는데 중학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수문이 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며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된 곳으로 정부합동 민원..
67. 종로6가 동대문역 인근 지역이다. 종로6가는 종로에서 여섯번째의 거리라는 뜻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종로6가에는 한성부 4부학당의 하나인 동학(東學)이 있었기 때문에 이와관련된 지명이 많다. 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자리는 조선시대 4부 학당의 하나인 동학이 있었으므로 일대의 마을을 동학동이라 하였다. 동학골 서쪽에 위치한 마을은 동학이 있어 선비들을 길러냈으므로 양삿골, 양사동(養士洞), 양인사동(養人舍洞)으로 불렀다. 313~320번지 일대는 대학천과 청계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섬처럼 보였기 때문에 섬말 도촌(島村)이라 하였다. 종로6가의 상인들이 관원의 착취를 꺼려 집 앞채를 납작하게 짓고 방망이 같은 살창을 하여 겉으로는 어려운 것처럼 꾸미고 안채는 훌륭하게 지었기 때문에 두방망잇골·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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