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동편지역이다.
행촌동은 1914년 동명 개정에 따라 서부 반송방(盤松坊)의 은행동(銀杏洞)과 신촌동(新村洞)의 마을을 합쳐 동명을 붙인데서 유래되었다.
행촌동은 조선시대의 자연부락이던 곡정동(谷井洞)·어수정동(御水井洞)·신촌동(新村洞)·은행동(銀杏洞)이 모여 형성된 동인 만큼 자연부락 이름에 얽혀있는 유래가 많다.
곡정동은 골우물골이라고도 하는데 어수우물골 아래에 있다. 골짜기에 우물이 있으므로 해서 붙여졌다. 인왕산 자락을 타고 내려와 형성되었으므로 골짜기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독립문 가까이로 뻗어 내려간 골짜기 끝 행촌동 209번지에 우물이 있음으로 해서 일대의 마을을 골우물골이라 하였다.
신촌동은 새말이라고도 하며 독립문로로 편입된 지역과 교북동 1번지 및 골우물골과 연접된 지역을 말하는 모화관(慕華館)을 헐어내고 난 후 새로 생기기 시작한 동네이다. 일설에 의하면 서대문형무소가 맞은 편 현저동 101번지에 생기고 나서 많은 애국지사들이 수감되자 옥바라지를 하기 위한 그들의 가족들이 모여들어 집단부락으로 형성되었으므로 새말이라 했다고 한다.
어수우물골은 대신중고등학교 일대를 말하는데 이곳에 있던 우물의 물맛이 달고 좋았으므로 나라에서 식수(食水)로 사용했다 하여 어수정(御水井)이라 하였으며 어수정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어수정동 혹은 어수우물골이라 하였다. 어수우물골과 이웃한 171번지 일대에는 맹인들이 살았으므로 통명(通明)고을이라 했는데 이름이 변하여 동명골로 되었다.
행촌동 1-113번지에 있는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을 은행동 혹은 은행나무골이라 한다. 은행동은 한 때 개미마을이라고도 불렸었는데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폐휴지를 수합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자립단(혹은 자립부락민)들이 집단 거주하였다.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 같아서 개미마을이라는 애칭이 붙었는데 1980년을 고비로 하여 일대의 정비가 되자 어느 정도 재산을 모든 이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동네 이름만 전설처럼 남아 있다.
행촌동은 남미대륙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데 210-736번지를 정점으로 하여 동북쪽은 사직동, 서쪽은 무악동, 남쪽은 교북동과 홍파동으로 서로 맞닿아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대한매일신보 사옥
권율장군 집터
양공거사비
김상용집터
염상섭집터
연향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