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에서 북악터널 넘어 있는 지역이다.
평창동은 이곳에 선혜청(宣惠廳)의 평창(平倉)이 있었으므로 해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평창동의 지형은 북한산 줄기가 뻗어 내린 관계로 평지보다는 계곡과 산이 많다. 평창동의 유래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고종 때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평창동이 한성부 상평방(常平坊)내의 선헤청계에 속하여 있고, 그 후 일제강점기에 와서는 1914년 4월 1일 경성부제 실시에 따라 평창동은 율목동(栗木洞), 월계동(月桂洞)과 함께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평창리라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광복된 후에도 곧 서울에 편입되지 못하다가 1949년 8월 13일 경기도 은평면 평창리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로 편입시키고, 동년 8월 14일 서대문구에 은평출장소를 설치하여 관할하에 두다가 1950년 3월 15일 평창리는 평창동으로 바뀌었다. 1955년 4월 18일 행정동제가 실시될 때 구기동과 평창도의 첫글자를 따서 구평동(舊平洞)으로 하였다. 1970년 5월 18일 평창동사무소가 설치되어 구기동과 평창동을 관할하고 있으며 1975년 10월 1일에는 구관할구역의 변경이 있을 때 서대문구에서 종로구 평창동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른다.
평창동에는 율목동(栗木洞), 신창(新倉), 월계동(月溪洞), 평창굴장안의 토착마을이 있다. 율목동은 밤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밤의 수확이 많은 동이므로 밤나무골이라 했던 것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평창은 선혜청의 평창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센창이라고도 하며 156번지 일대를 일컫는다. 평창굴은 330번지 일대인데 총융청의 평창이 있어서 붙여졌으며 당초에는 한양굴이라 하였다.
월계동은 월계정(月桂亭)이 있었기 때문에 동네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월계수로 만든 정자가 있기 때문에 월계동(月桂洞)이라 하던 것이 월계동(月溪洞)으로 바뀌어졌다.
186 ∼ 187번지 일대는 장안이라 하여 평창동 중에서도 가장 큰 토착부락이었다. 도읍을 가리키는 말을 장안이라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일대는 한 때 유원지로서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던 곳이다.
평창동은 북쪽은 경기도 고양시와 성북구 정릉동, 동쪽은 성북동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삼청동, 부암동과 서쪽은 신영동, 구기동과 접하고 있다.
종로구의 북쪽 끝에 해당되는 평창동은 전체 면적의 65% 이상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되어 있는 동으로 북쪽지방은 표고 200 ~ 714m의 비교적 높은 산지이며 동쪽과 남쪽 사이 급경사의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해원사
천제단
평창터
평창동 보현산신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