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동편 경복궁쪽으로 나오는 지역이다.
팔판동의 동명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여덟명의 판서가 살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순조년간(1801~1834)에 저술된 『한경지략(漢京識略)』권2 각동조(各洞條)에도 팔판동의 유래가 되었던 8명의 판서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고 있다. 단지 팔판동은 서울에서도 자연 지리적 조건이 좋기로 유명한 곳인 만큼 8명의 판서가 함께 살았다는 것이 그저 우연히 발생한 전설(傳說)에 그친 것이 아닐 것 같다. 이곳은 옛부터 「팔판서골」이라 하던 곳으로 아마도 주요 관아가 경복궁 남쪽에 위치해 있어 직주(職住)근거리의 편의성에 따라 경복궁 동북쪽에 인근하여 있는 이곳에 판서들이 주거지를 택하였을 가능성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복개된 삼청동길이 삼청동 계곡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개천이면서 경복궁의 바로 동쪽에 위치한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벼슬길에 오른 양반들의 집단거주지가 되기도 하였다. 북촌(北村) 양반골을 형성했던 이곳에 판서 8명이 살았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 맥락은 지금도 이어져 삼청동 총리공관이 팔판동의 북쪽 끝지역과 이어져 있고 팔판동의 서쪽길은 청와대 앞으로 통하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삼청동 157번지와 팔판동 115번지가 서로 연이어 있기 때문에 이 일대에 조선시대 삼청전(三淸殿)이 있던 곳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의 팔판동은 종로구의 북부지역으로 경복궁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북쪽 및 북동쪽으로는 삼청동, 서쪽으로는 청운동과 세종로동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 소격동, 남동쪽으로는 화동과 인접해 있다. 또한 동십자각에서 삼청공원을 거쳐 삼청터널에 이르는 삼청동길이 팔판동의 동남부를 지나고 있다. 이 길은 율곡로와 사직로에서 성북동길과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길로서 옛부터 서울의 명소인 삼청동 계곡을 찾는 길이며, 숙청문을 지나 성북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삼청동 문화거리
편싸움 하던 곳(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