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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통인동 경복궁역에서 청운동 가는 방향 지역이다. 통인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 옛 마을의 하나인 한성부 북북 준수방 통곡과 인왕산의 글자를 각각 한자씩 따온 데서 유래되었다. 1936년 4월 1일 서울의 동명을 일제식의 정(町)으로 일원화 하면서 통동(通洞)에서 통인정(通仁町)으로 바뀌어 졌다. 이는 이웃해 있던 통의동(通義洞)이 1914년의 동명 개정 때 통의방(通義坊)의 방명(坊名)을 그대로 따서 동명으로 삼은데 비해 통인동은 이곳을 이룬 옛 자연부락인 통곡(通谷)의 이름을 따서 통동이라 하다가 1936년 동명 개칭 때 이웃한 동의 이름을 유교의 기본 덕목이 되는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두 번째인「의」를 사용한 대신 통동은 그 첫째 근본이 되는「인」을 넣어 통인정으로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인의동..
77. 통의동 경복궁 궁궐 성곽 서편지역이다. 통의동의 동명은 조선시대에 이곳이 한성부 북부 의통방(義通坊)이었다가 갑오개혁 때 통의방(通儀坊)으로 바뀐데서 유래된다. 통의방은 태조5년(1396) 4월 한성부에 명하여 한성5부의 각 방명표(坊名標)를 세우게 할 때 북부 10방 중 하나로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데 이 의통방이 곧 지금의 통의동을 중심한 지역이었다. 의통이란 방명은 그 후 500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관제와 지방구역의 개정이 있으면서 종래 5부(五部)를 5서(五署)로 고치고 방동명(坊洞名)의 일부 개정이 있을 때 종전의 의통방이 통의방으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의 동명 제정으로 종전 통의방을 중심지역으로 한 동명으로 바꾸어졌다. 통의동을 형성하고 있는 마을로는 흰 소나무가 있..
76. 충신동 동대문과 종로5가역 사이 지역이다. 충신동의 동명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동의 서북쪽에 조선시대 유학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있고, 동쪽으로는 4부학당의 하나인 동학(東學)이 있었기 때문에 유학이 성하던 곳이라 하여 유학의 8대 강목인 인의예지충신(仁義禮智忠信)을 각 두글자씩으로 한 동명을 만들었다는 설과 1914년 경성부의 동명 제정 때 방명(坊名)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충신의 일부 지역이 조선시대 숭신방(崇信坊)에 해당되므로 「숭」의미가 비슷한 「충」을 써서 충신동이 되었다는 설이다. 효제동과 충신동의 경계가 되는 도로는 대학천을 복개하여 만들었다. 이 때문에 충신동에는 여러개의 다리가 놓였으며 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았다. 충신동 214번지와 종로6가 238번지, 효제동 164번지..
75. 체부동 경복궁역 세종마을 북쪽지역이다. 북쪽으로는 통인동(通仁洞), 동쪽으로는 통의동(通義洞), 남쪽으로는 내자동(內資洞), 서쪽으로는 필운동(弼雲洞)과 접해 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 북부 순화방(順化坊), 1751년(영조 27)에 한성부 북부 순화방 사재감계(司宰監契)에 속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한성부 북서(北署) 순화방 하패계(下牌契) 구곡동(九曲洞)·체부동(體付洞)·누각동(樓閣洞) 등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한성부 북서 순화방 하패계 구곡동·체부동과 누각동 일부가 통합되어 체부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체부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체부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74. 청진동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 지역이다. 청진동은 이곳은 조선시대 한성부 징청방(澄淸坊)과 수진방(壽進坊)의 일부였던 관계로 방명에서 한자씩 따온데서 유래되었다. 청진동의 동명이 유래된 수진방에는 수진궁이 있었다. 수진궁은 조선 예종의 둘째아들인 제안대군 현( )의 사저로 그 뒤 어려서 죽은 대군(大君), 왕자, 공주, 옹주 및 자손이 없는 후궁들의 제사를 지내는 궁(宮)이 되었다. 지금의 수송동 삼양식품(전 종로국민학교) 동북방과 종로구청의 일부에 해당된다. 또 징청방의 징청은 난세를 다스려 밝게 한다는 뜻이다. 청진동의 자연부락 명칭 및 지명은 다음과 같다. 금부뒷골은 공평동과 청진동을 경계로 하는 길의 청진동 쪽에 있는 마을로 금부후동(禁府後洞)이라고도 하며 공평동 94번지에 의금부가 있었기 때문에 의금부..
73. 청운동 청와대 북서쪽 지역으로 자하문터널 가기 직전이다. 청운동의 동명은 이곳에 원래 있던 청풍계(淸風溪)와 백운동(白雲洞)의 첫글자를 따온 데서 유래된다. 동명이 유래된 청풍계와 백운동은 도성 북쪽 인왕산과 백악사이 자하문(창의문)고개의 남쪽에 있다. 이곳은 깊숙하고 그윽한 계곡에 맑은 수석이 청풍과 함꼐 항상 백운으로 덮여 있었다. 백운동에는 조선 초기 중추부 이의념(李義念)이 살자 그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성의 서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백운동은 산도 높지 않고 골짜기도 그렇게 깊지 않지만 푸른 송림과 등라덩굴 사이로 맑은 냇물이 소리내어 흐르고 맑은 하늘에는 아침 저녁으로 점점이 떠있는 흰구름이 아름다워 주변의 경관과 함께 어우러지므로 옛날부터..
72. 창신3동 창신역과 한성대, 낙산공원 사이 지역이다. 창신동의 동명은 조선초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방(坊) 가운데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의 글자를 따서 1914년 동명 개정 때 제정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개창하고 한성부의 행정관할 구역을 제정할 때부터 있어왔던 창신동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연부락의 이름도 많다. 창신3동(Changsin3(i)-dong) 숭인동의 청룡사(靑龍寺)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은 자줏굴, 자지동(紫芝洞)이라 불렀다. 자줏굴 돌산 중턱에는 청룡정(靑龍亭)이 있었다. 사정(射亭)으로 장충단의 석호정(石虎亭), 마포의 화수정(華水亭), 가회동의 일가정(一可亭), 천연동의 서호정(西虎亭)과 함께 서촌오처사정(西村五處射亭)의 하나로 이름이 났던 곳이다. 청룡정의 동쪽..
71. 창신2동 동대문역과 동묘역, 창신역 사이의 지역이다. 창신동의 동명은 조선초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방(坊) 가운데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의 글자를 따서 1914년 동명 개정 때 제정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개창하고 한성부의 행정관할 구역을 제정할 때부터 있어왔던 창신동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연부락의 이름도 많다. 창신2동(Changsin2(i)-dong) 창신2동 649번지에는 한우물이 있었는데 우물의 규모가 크고 수량도 많기 때문에 큰우물, 대정동(大井洞)이라 하였다. 창신2동 입구에서 약 300m정도 들어간 지점을 홍숫골 혹은 홍수동(紅樹洞)이라 부르는데 복숭아와 앵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으므로 마을 전체가 온통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로만 싸여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벽에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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