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beat Explorer (300) 썸네일형 리스트형 5. 동소문동 동소문동1가는 동소문동 행정구역을 분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소문동 동명은 한양 도성의 4소문 중 동소문인 혜화문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는데, 1949년 돈암동 인구의 증가로 행정동을 나눌 때 처음으로 생겨난 동명이다. 동소문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에 속했으며, 1895년 한성부 東署 숭신방(성외) 동문외계 돈암리였다. 1911년 4월 1일 일제는 경기도령 제3호로 5부 8면제를 실시함에 따라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여 경기도에 편입시켰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해 다시 경성부의 구역이 확장되자 정릉리의 일부가 포함되어 경성부 돈암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 4. 동선동 동선동1가 동명은 동선동 행정구역을 분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선동 동명은 인접해 있는 동소문동과 삼선동에서 각각 한 글자를 따서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동선동이라는 동명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9년 돈암동 인구의 증가로 행정동을 신설할 때 생겼다. 동선동은 동소문동・삼선동 지역과 같이 조선 초부터 한성부에 속했으며, 1895년 한성부 東署 숭신방(성외) 동문외계 돈암리였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한성부를 경기도에 예속시켜 5부 8면제가 시행되면서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돈암리를 칭하다가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행정구역이 개편 축소되면서 삼선평과 통합하여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숭신면과 인창면을 통합) 돈암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4. 동빙고동 동빙고동 동명은 조선시대에 국가의 여러 제향에 사용하는 얼음을 저장하는 東氷庫가 있던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현재의 동빙고동은 서빙고동의 동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되었다. 동빙고동은 조선 전기에 한성부 남부 성외 지역이었으며, 영조 27년(1751)에 반포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론≫에 의하면 한성부 남부 둔지방(성외) 서빙고2계라 칭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南署 둔지방(성외) 서빙고2계의 서빙고동으로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동빙고리로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동빙고정이 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度가 .. 7. 동교동 동교동은 ‘잔다리’, 즉 細橋의 동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되었다. 잔다리 동쪽의 위쪽 마을이었으므로 ‘윗잔다리’ 또는 동세교리였다가, 동교동으로 이름 붙여졌다. 동교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북부 의통방(성외) 세교리계였으며, 고종 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성외) 세교리1계・세교리2계 지역이었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희방(성외) 세교1계 세교동, 세교2계 세교동・宮洞에 속하였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연희면 세교리2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 3. 돈암동 돈암동 동명은 지금의 미아리고개를 조선시대 야인(되놈)들이 동소문을 이용하여 도성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되너미고개〔狄踰峴〕라 부르고, 되너미고개를 한자명으로 敦岩峴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돈암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 숭신방(성외)에 속하였으며, 고종 4년(1867년)에 발간된 ≪육전조례≫에 의하면 한성부 동부 숭신방 사하리계이었고 1895년 한성부 東署 숭신방 동문외계 돈암리로 바뀌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한성부를 경기도에 예속시켜 5부8면제가 시행되면서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돈암리를 칭하다가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행정구역이 개편 축소되면서 삼선평과 통합하여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따라 경성부.. 2. 독산동 독산동 동명은 이 마을 산봉우리에 나무가 없어 벌거숭이 산이어서 대머리・민둥민둥할 ‘禿’자를 쓴 데서 유래되었다. 독산동은 조선 중기까지 경기 금천현 지역이었으며, 정조 19년(1795) 시흥현으로 바뀌어 東面에 속하였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인천부 시흥군 동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시흥군은 과천군과 안산군을 합하여 시흥군이 되었고, 시흥군 동면 독산리는 문교리와 합하여 시흥군 동면 독산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역 확장으로 시흥군의 동면이 서울특별시에.. 6. 도화동 도화동 동명은 이곳에 복숭아나무가 많고 봄철이 되면 복사꽃이 피어 경치가 좋으므로 ‘복사골’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하였다. 도화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마포계?도화동계 지역이었으며,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마포계?도화동내계?도화동외계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도화동계 외동?내동, 마포계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도화내동과 마포로 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 3. 도원동 도원동 동명은 이곳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있어 桃山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도원동은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으며, 효창동과 함께 조선 중기에 용산방에 속하였는데,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용산방(성외) 만리창계 지역이었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한 갑오개혁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만리창계에 속하였고, 1911년 4월 1일에는 경성부 용산면 만리창이 되었다. 1914년 3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용산면 만리창 일부를 미생정이라 칭하였으며,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실시된 區制度에 따라 용산구 미생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