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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무교동 무교동 동명은 조선시대 이 부근에 무기의 제조 관리를 맡아 보던 軍器寺가 있어 모전다리 부근에 있던 모교동과 구별하기 위해서 무교동으로 이름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무교동은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여경방・황화방 지역과 남부 광통방과 중부 서린방 각 일부에 해당되었으며,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서부 황화방 소정동계・여경방 모전계, 도자동계, 남부 광통방 모전계, 대다방북변계 소다방남변계, 소다방북변계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28호로 5部가 5署로 바뀌면서 西署 여경방 모전계 사동・두죽동・면동・무교동, 중서 합동계 모교가 되었으며, 이듬해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5署에서 5部로 다시 바뀌었다.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조선총독부령 ..
1. 목동 목동 동명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후 시행한 안양천 제방공사로 많은 농경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갈대가 우거진 침수지대로 목초가 무성하였기 때문에 말을 방목하는 목장으로 이용되었으므로 牧洞이라 하였던 것이 木洞으로 변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목동 지역에 옛날부터 나무가 매우 많았으므로 목동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목동은 조선 초기까지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이 되었으며,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하였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남산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5. 명일동 명일동 동명은 고려 성종 11년(994)에 이곳에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의 숙박소로서 明逸院이라는 원을 두어 편의를 제공한 데서 유래되었다. 명일원・원터골이라고도 하였다. 명일동은 조선시대에 경기 광주목에 속하였으며,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한성부 11군 중 광주군에 속하였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 339군으로 개정하고 5등으로 구분하였는데, 명일동은 경기도 38군 중 1등에 해당되는 광주부에 소속되었으며, 1906년 10월 1일 칙령 제48호에 의해 광주부는 광주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 명일동은 광주군 龜川面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
9. 명동 명동1가 동명은 명동 지역을 분리 관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동 동명은 조선 초 한성부의 행정구역인 남부 명례방의 ‘명’자를 딴 것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명례방 또는 명례방골이라고 하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하였다. 명동1가는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례방이었으며,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는 남부 명례방 장악내계・명례동계・부계, 훈도방 저전동계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성부 南署 명례방 명동계 명동・장악원계 장악원동・소룡동계 소룡동・대룡동계 대룡동・종현계 종현동・저동계 저동과 회현방 구남부계 구남부동・소룡동계 소룡동・대룡동계 대룡동으로 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구역이 되었으며, 1914년 4월 1일 ..
2. 면목동 면목동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 들판을 舊門契・古門契・문계・곰계 등으로 불렀으며 목장의 문 앞에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면목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 면목리였으며, 1984년 갑오개혁 때는 한성부 南署 두모방(성외) 전곶중계・하계 면목리동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두모면 면목리와 양주군 망우리면 일부에 해당되었으며, 1914년 3월과 4월에 경기도 각 면의 명칭과 구역을 정할 때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면목리가 되었다. 그 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에 의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면목동은 동대문구에 소속되었다. 1973년 7월에는 관악구와 도봉구가 증..
9. 망원동 망원동 동명은 한강변의 명소인 望遠亭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망원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성외) 망원정1계・망원정2계・망원정3계로 하였다가,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희방(성외) 망원정계 월사동, 정자동계 정자동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망원동이 되었다가, 1914년에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망원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에 의해 경성부 행정구역이 확장될 때 경성부 망원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
1. 망우동 망우동 동명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의 경계가 되는 곳에 있는 망우고개에서 유래되었다. 망우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 양주군 망우리면에 속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는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養源里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과 4월에 경기도 각면의 명칭과 구역을 정할 때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가 되어 변동 없이 내려왔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동대문구에 소속 되어 망우동이 되었으며 1977년 9월 1일에는 망우동이 망우제1・2동으로 분동・신설되었다. 그 뒤 1980년 7월 1일에는 망우제2동을 망우제2・3동으로 분동・신설하였고 그후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에 의해 중랑구가 신설되자 망우동은 중랑구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8. 만리동 만리동1가 동명은 만리동 지역을 분할 관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리동 동명은 萬里峴 고개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만리재는 세종 때 문신 崔萬里가 살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리동1가는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했으며, 영조 이후에는 서부 반석방 약전계와 조전계 동산동(속칭 만리현)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서부 반석방의 중동과 동산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봉래정3정목이라 하였으며, 1943년 6월 10일 府令 제163호로 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서대문구 봉래정3정목으로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봉래정3정목은 만리재의 이름을 따서 만리동1가로 하였으며,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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