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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포동 마포동 동명은 우리말 ‘삼개’로 불리어지는 포구 이름을 한자명으로 ‘마포’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마포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영역 안에 포함되어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마포계?옹리상계?옹리중계?옹리하계 지역이었으며,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마포계?옹리상계?옹리중계?옹리하계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마포가 되었고,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와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경성부의 5부 8면제를 폐지하면서 마포 일부는 도화동으로 다른 일부는 마포동으로 하였다. 동년 9월 27일 경..
3. 마천동 마천동 동명은 이 지역에 있는 馬山의 이름을 따서 馬川里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조선시대 林慶業 장군이 마산을 지나다가 백마를 얻어 말에게 물을 먹인 백마물이란 곳이 있는데,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이 계속 나와 馬泉이라 하였으며 후에 馬川으로 변한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천동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의 일부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일대 돌무더기・가운데말・아랫말을 병합하여 광주군 중대면 마천리로 칭하였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마천동이 되었다. 그 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성..
3. 마장동 마장동 동명은 이곳 일대에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던 목마장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마장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동부 인창방(성외)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동부 인창방(성외) 마장리계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東署 인창방 동소문외계 마장리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를 5부 36방,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경성부 인창면 마장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마장리가 되었으며,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관할구역이 확장될 때 경성부 마장정이 되었다. 1943년 6..
7. 마곡동 마곡동 동명은 옛날 이 일대에 삼〔麻〕을 많이 심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마곡동은 조선 초기까지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으로 되었으며,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군내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해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천군은 김포군・통진군과 합하여 김포군이 되었고, 양천군 군내면의 후포리와 마곡리를 합하여 김포군 양동면 마곡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역 확장으로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옛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
6. 등촌동 등촌동 동명은 이 마을의 지형이 산등성이로 구성되어 등마루라고 불려졌는데 이를 한자명으로 등촌동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등촌동은 조선 초기까지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으로 되었으며,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남산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천군은 김포군・통진군과 합하여 김포군이 되었고, 양천군 남산면의 등촌리 일부는 가양리에 합해지고 나머지는 김포군 양동면 등촌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4. 둔촌동 둔촌동 동명은 고려 말 이곳에 은거했던 李集의 호 遁村에서 유래되었다. 둔촌동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광주목에 속하였으며,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한성부 11군 중 광주군에 속하였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 339군으로 개정하고 5등으로 구분하였는데, 둔촌동은 경기도 38군 중 1등에 해당되는 광주부에 소속되었으며, 1906년 10월 1일 칙령 제48호에 의해 광주부는 광주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 둔촌동은 광주군 龜川面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일대 약수터・굴바위・안둔굴・밖둔굴 등을 합하여 광주..
3. 동작동 동작동 동명은 조선시대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길목에 한강나루의 하나인 동작진, 즉 동재기나루터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동작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동작리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동작리와 포촌리를 병합하여 동작리라 하였으며, 앞서 과천군 소속이었던 것을 시흥군 북면에 편입시켰다. 그 후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해 경성부에 편입되어 경성부 동작정이 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영등포구에 속하였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영등포구 동작동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
5. 동자동 동자동 동명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정리할 때 생겼으므로 서계동의 대칭으로 동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동자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서부 성외 지역이었으며, 1867년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서부 반석방(성외) 도저동계*석교계*연지계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행정구역 명칭과 구역을 정할 때 경성부 서부 동자동의 도동*신촌동*주교*석교동*한지면의 갈월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시정이라 칭하였다. 1914년 9월 27일 경성부조례 제8호로 동*서*북부 및 용산의 4개 출장소가 설치될 때 동자동에 해당하는 고시정은 서부출장소 관할로 되었으며, 1943년 6월 10일 區制度를 실시함에 따라 중구 고시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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