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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아동 미아동 동명은 미아제7동에 있는 불당골〔佛堂谷〕에 彌阿寺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서방정토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품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彌陀寺가 미아사로 바뀌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미아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내에 있었으며, 고종 32년(1895)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東署 숭신방 동소문외계 미아리로 처음 나타난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서울의 행정구역을 5부8면제로 할 때 이곳은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미아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숭신면과 인창면을 합하고 미아리와 불당동을 합하여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가 되었다. 광복 후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에 의한 서울..
5. 미근동 미근동 동명은 이 지역에 있던 尾洞 또는 尾井洞이라는 마을 이름의 ‘尾’자와 미나리 밭이 있어 芹洞이라 부르던 마을 이름의 ‘芹’자를 합성하면서, ‘尾’자를 물결무늬 ‘渼’자로 바꾼 데서 유래되었다. 한자명의 뜻대로 한다면 미나리가 물결치는 마을이 되기도 한다. 이 일대가 미나리 밭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도 한다. 미근동은 조선 전기에는 한성부 서부 반송방(성외)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 1751년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서부 반송방(성외) 수근전계・노첨정계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西署 반송방(성외) 노첨정계 미동・수근전계 근동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종래의 한성부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4. 문정동 문정동 동명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행차하던 중 이곳에서 쉬면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매우 좋아서 이 마을에 많이 사는 文氏 성을 따서 文井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이 마을 지형이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蓮花洞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문정동은 조선시대에 경기 광주목에 속하였으며,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8道制가 폐지되고 전국이 23府 337郡으로 개편될 때 한성부 11군 중 광주군에 속하였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道 339郡으로 개정하고 5등으로 구분하였는데, 문정동은 경기도 38군 중 1등에 해당되는 광주부에 소속되었으며, 1906년 10월 1일 칙령 제48호에 의해 광주부는 광주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 문정동은 ..
6. 문배동 문배동 동명은 현재 신계동에 있는 문배산의 이름을 따서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문배동은 17세기 중엽까지는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여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지역이었으며,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는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청파4계・청파5계로 칭하였다. 1867년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서부 용산방(성외) 청파4계로 되었으며,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한 갑오개혁에 따른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청파상4계와 사거리계로 되었다. 1911년에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청파4계로 칭하였으며,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청파4계 일부를 경성부 경정으로 바꾸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
4. 문래동 문래동 동명은 일제강점기 鍾淵・東洋 등 군소 방직공장이 들어서자 일본인들이 絲屋町이라고 불렀으며, 광복 후에 文益漸의 목화 전래와 물레 제작 사실과 연관하여 문래동으로 이름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문래동은 조선시대에 시흥현 상북면에 속하였으며, 이 일대가 안양천과 도림천의 우안으로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고 하여 모랫말(사천리)이라 불렀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할 때 인천부 시흥군 상북면이 되었다가,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해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시흥군 상북면 사돈리・도야미리・원지목리를 합하여 시흥군 북면 도림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
12. 묵정동 묵정동 동명은 지금의 묵정동・충무로4가・충무로5가・필동2가・필동3가에 걸쳐 있던 먹절골의 감정우물에서 유래되었다. 묵정동은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과 훈도방 일부 지역이었으며, 영조 때는 남부 훈도방 묵정계동과 명철방 쌍이문계였다. 1895년 5월 26일 南署 명철방 쌍림동계 쌍림동・야현계 야현동 및 낙선방 묵동계 묵동으로 되었다. 그 뒤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남부 쌍림동・야현동・묵동 일부를 합하여 新町으로 하였으며,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중구 신정이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묵정동이 되었다. 1985년 9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2016호에 의해 장충동사무소의 관..
3. 묵동 묵동 동명은 옛날 이곳에서 먹을 제조하였던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文房四友의 하나인 먹을 이곳의 동명으로 붙여야 학문이 발달할 것이라는 秘記說에 따라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묵동은 1895년 5월 26일 전국을 23부 336군으로 개편한 이듬해 8월 6일, 23부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13도로 나누면서 한성부에서 분리,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묵동리가 되었다. 1914년 3월과 4월에 경기도 각면의 명칭과 구역을 정할 때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묵동리가 되었다. 그 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로 서울특별시의 대대적인 구역확장이 있었는데 이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편입되어 묵동이 되었으며,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로 중랑구가 신설되어 묵동은 중랑구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
11. 무학동 무학동 동명은 이 동의 북쪽에 남산의 줄기가 이어진 舞鶴峰(92m)이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무학동은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두모방(성외)에 속했으며,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는 남부 두모방 신당리계・신촌리계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될 때 한성부 南署 두모방 왕십리계 무학동이 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경기도 경성부 남부 두모방(성외) 왕십리계 무학동이 되었으며,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 두모면 왕십리계 무학동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하왕십리가 되었고,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로 경성부 하왕십리정에 편입되었으며,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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