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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광동 보광동 동명은 신라 진흥왕 때의 普光國師가 세운 사찰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보광동은 조선 전기에는 한성부 남부 성외 지역이었으며, 조선 중기에는 한성부 남부 한강방(성외) 지역이었다. 갑오개혁으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한성부 南署 한강방(성외) 주성리계 보광리동이었으며,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 한지면 보광리가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보광리로 칭하였으며,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에 의한 경성부 관할구역 확장에 따라 경성부 보광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度를 실시하면서 용산구 보광..
2. 번동 번동 동명은 고려 말기에 “이씨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비기설이 있었는데, 이때 한양 삼각산 아래 이곳에 오얏나무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이씨가 흥할 징조라고 여겨 오얏나무를 베는 伐李使를 보내 나무를 베어낸 데서 이곳을 伐里라고 칭하다가 한자명이 樊里로 변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번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에 속하였으며, 고종 4년(1867)에 발간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 벌리계로 나타난다. 고종 32년(1895)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東署 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 번리로 칭하였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일제는 서울의 행정구역을 5부8면제로 하였는데, 이때 이곳은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번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숭신면과..
8. 방화동 방화동 동명은 이 지역이 개화산 옆에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방화동은 조선 초기까지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이 되었으며,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군내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가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천군은 김포군・통진군과 합하여 김포군이 되었고, 양천군 삼정면의 정곡리・치현리・능리를 합하여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역 확장으로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옛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역..
2. 방학동 방학동 동명은 방아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말로 방아골(굴)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放鶴里로 쓴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조선시대에 도봉서원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앉아 중다리를 내려다보니 학이 평화롭게 많이 앉아 놀므로 이곳을 방학굴(골)이라 하였다고 하고, 또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지명을 방학으로 하였다는 설도 있다. 방학동은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경기도 양주목 내의 34개 면 가운데 해등촌면에 속하였고,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 양주군이 한성부에 소속됨에 따라 한성부 양주군 해등촌면이 되었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양주군이 경기도로 환원됨에 따라 경기..
5. 방이동 방이동 동명은 이 마을의 지형이 아늑하고 개나리꽃이 많이 피었으므로 방잇골로 불리다가 한자명으로 방이동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방이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방이동으로 불렸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일대 방잇골・웃말・건너말을 합쳐 광주군 중대면 방이리라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방이동이 되었다. 그 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리 신설됨에 따라 강남구에 이속되었고, 197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강동구를 신설하면서 강동구에 속하였다. 한편 1..
13. 방산동 방산동 동명은 마을 부근에 있는 假山 또는 造山이라 부르던 곳에 무궁화꽃을 많이 심어 그 꽃향기가 발산된 데서 유래되었다. 방산동은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에 속했으며,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는 남부 명철방 청녕위계였다. 1894년 갑오개혁 뒤 남서 청녕위계 오교남변・연방동 일원으로 되었다. 그 뒤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경성부 남부 오교동・연방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방산정이라 하였으며,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중구 방산정이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중구 방산동으로 하였다. 1977년 9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185호에 의해 ..
3. 방배동 방배동 동명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마을 북쪽에 흐르는 한강을 등진〔背〕 모서리〔方〕라는 뜻으로 方背洞이 되었다고도 한다. 방배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방배리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시흥군 신동면 방배리라 하였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방배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호에 의해 관악구가 설치되면서 방배동은 관악구에 속하였으며, 1980년 4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강남구에 편입되었다. 다시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
2. 반포동 반포동 동명은 이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서릿개라 하고 한자명으로 蟠浦로 표기하였는데, 뒤에 盤浦로 바뀐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이곳이 홍수의 피해를 입는 상습 침수 지역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반포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상반포리・하반포리 지역이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시흥군 신동면 반포리라 하였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반포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780호로 신설된 성동구 영동출장소 관할이 되었고, 1975년 10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78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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