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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선동 도선동 동명은 통일신라 하대에 풍수도참설을 일으킨 도선대사가 무학봉에서 수도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으로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왕십리에 와서 지세를 살피고 있었는데, 소를 타고 지나던 한 노인이 무학대사를 보고 서북쪽으로 10리를 더 가라는 가르침을 받았는데, 바로 이 노인이 홀연히 모습을 나타낸 도선국사였다고 하는 전설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선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동부 인창방(성외) 왕십리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東署 인창방 왕십리계 단지동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
1. 도봉동 도봉동 동명은 서울 근교의 명산인 도봉산 아래에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도봉동은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경기도 양주목 내의 34개면 가운데 해등촌면에 속하였고,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 양주군이 한성부에 소속됨에 따라 한성부 양주군 해등촌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양주군이 다시 경기도에 소속됨에 따라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주군의 해등촌면 지역인 이곳과 노원면 지역을 합하여 노해면으로 고치고, 이 도봉산 아래에 있는 상누원리・영국리・무수동(무수울)・도당리 일부를 합하여 도봉리로 하니, 이것이 도봉이라는 동리명의 출발이었다. 1963년 1월..
3. 도림동 도림동 동명은 산의 형국이 마을 뒤로 성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 마을이 국도에서 돌아 앉아 있다고 해서 도야미리라고 부르고 한자명으로 ‘도림’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도림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시흥현 상북면에 속해 있었으며,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할 때 인천부 시흥군 상북면에 속하였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해 실시된 13도제에 의하여 경기도에 다시 속하게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시흥군 상북면・하북면과 과천군의 하북면과 상북면 일부를 합하여 시흥군 북면을 신설하고, 시흥군 상북면의 사돈리・도야미리・원지목리를 합하여 시흥군 북면 도림리로 칭하였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4. 도곡동 도곡동 동명은 이 마을 뒤에 매봉산이 둘러있고 아래쪽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있어 독부리라 하던 것이 변하여 독구리・독골이 되어 한자명으로 도곡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마을 뒤쪽 밭에서 많은 도기 조각들을 흔히 볼 수 있었듯이 옛날 이곳에 도요지가 있었을 개연성이 큰데, 이에 따라 자연마을 명을 ‘독골’이라 칭하였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음운변동을 일으켜 ‘독구리(도구리)’로 굳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도곡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양재동이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광주군 언주면 양재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옛 이름 ‘독골’에 근거하..
5. 대흥동 대흥동 동명은 독을 구워 파는 것을 업으로 삼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독막〔甕幕〕’ 또는 ‘독마을〔甕里〕’로 불리던 곳이 독막?동막 등으로 불리었는데 일제강점기 우리말의 의미를 모르는 일본인들에 의해 東幕下里로 되고, 후에 다시 이곳을 대흥정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대흥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옹리하계였고,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옹리하계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동막하계로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동막하리가 되었다. 1..
4. 대현동 대현동 동명은 아현동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를 대현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대현동 지역은 조선시대에 한성부 관할구역으로 한성부 북부 연희방(성외) 아현계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北署 연희방 아현2계 대현동・아현4계 마근동에 속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를 5부 36방으로,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대현동은 경성부 연희면 대현동・마근동이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 의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大峴里로 칭하였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에 의해 경성부의 관할구역이 확장되면서 경성부 대현정이 되었다. 1943년 區制度의 실시에 따라 서대문구 대현정이 되었다. 광복 ..
3. 대치동 대치동 동명은 이 지역 몇 개의 자연마을 중 큰 고개 밑에 있던 한티(또는 한터) 마을을 한자명으로 大峙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대치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대치동이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광주군 언주면 대치리로 칭하였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대치동이 되었으며, 서울특별시조례 제276호로 신설된 성동구 언주출장소에 속하였다. 1973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780호로 신설된 성동구 영동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에 의해 성동구에서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여 오늘에 ..
4. 대조동 대조동 동명은 이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았으므로 ‘큰대추나무골’이라 한 것을 한자명으로 대조동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대조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은방(성외) 사계라 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은방(성외) 사계 상정동・대조동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를 5부 36방으로,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경성부 은평면 대조동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대조리가 되었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서대문구 대조리가 되었으며, 195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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