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서쪽 지역이다.
창성동의 동명은 갑오개혁 때 북서 순화방관하에 사재감상패계 창성동(昌成洞)의 '성(城)'자와 순화방내 사재감하패계의 동명중에 장성동(長城洞)이라는 동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장성' 또는 '창성'으로 이름하는 옛날의 고성지(古城址)라고 있는 데에서 온 것은 아닌가 생각되나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지리서 중에서 그러한 고성의 유지(遺址)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성지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고 「청송당(聽松堂)」이 음이 서로 비슷한 관계로 하여 창성동(昌城洞)으로 변하고 성과의 관련이 없는 창성(昌城)이 무의미하는 점에서 다시 글자의 음이 같은 '성(成)'자로 바꾸어서 「창성동(昌成洞)」으로 아화(雅化)되어 유래된 것 같다.
창성동을 이루고 있는 자연부락 가운데 옥정동(玉井洞)은 일명 더운우물골이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물이 맑고 달아서 옥로수(玉露水)와 같다 하여 옥정(玉井)이라고도 하였다. 대동(帶洞)을 창성동과 통의동에 걸쳐 있었던 마을로서 띠를 만드는 집이 있으므로 이름이 붙어졌고 띳골이라고도 하였다. 백구동(白拘洞)은 효자동과 창성동에 걸쳐 있는 마을로 흰개를 많이 길렀으므로 흰갯골이라 하였다. 간곡(間谷)은 창성동 117번지 서쪽에서 67번지 옆으로 통한 사잇길에 있는 마을로 샛골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범숫골이란 마을이 백구동(흰갯골) 서쪽에 있었는데 수목이 많아서 범이 소를 많이 잡아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의 창성동은 동으로 효자로를 사이에 두고 세종로와 마주 보며 남쪽은 통의동과 서쪽은 자하문길을 경계로 통인동과 접해 있고 북쪽은 효자동에 이어졌다. 지금의 자하문길은 당초의 창성동쪽 1/3가량이 도로였고, 통인동쪽 1/3은 하천이었던 것을 복개, 확장하여 동의 서쪽 경계선이 되었다. 동 면적의 1/3가량 진명여자중·고등학교와 국민대학 부지였으나 진명여중·고는 1989년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종로경찰서에서 사용하며 국민대학부지는 정릉으로 대학이 이전한 후 지금은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서에서 사용하고 있다.
창성동은 동쪽의 효자로를 사이로 경복궁의 옆에 있으므로 맑은 공기와 함께 효자로를 따라 심어놓은 은행나무의 가로수가 매우 운치있는 곳이며, 서울 시내에서 가장 은행잎이 아름다운 색상으로 물드는 곳이 창성동쪽의 효자로를 따라 심어져 있는 가로수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진명여학교 터
체신관리양성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