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5가역에서 동대문 방향의 지역이다.
종로5가의 동명은 종로에서 다섯번째의 거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종로5가는 남쪽으로 청계천, 동쪽으로는 성북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두다릿골은 종로4가와 종로5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두다리가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이교동(二橋洞)이라고도 불렀다. 이교(二橋)는 두다리 외에도 재교(再橋)·연못골다리·연지동교(蓮池洞橋)로도 불렸는데 연못골과 연결되던 곳으로 종로5가 78번지와 효제동 331번지 근방을 이어주던 다리이다. 동대문에서 종로쪽으로 두번째 다리가 된다. 웃냇골은 개천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상천변동(上川邊洞)으로 불렸다. 청계천에 면한 지역이다.
한우물골은 큰 우물이 있으므로 한우물 또는 대정동(大井洞)이라 하였다. 웃한우물골은 한우물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웃한우물골 또는 한자명으로 상대정동(上大井洞)이라 하였다. 아래한우물골은 한우물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아래한우물골 또는 한자명으로 하대정동(下大井洞)이라고도 하였다.
어의동(於義洞)은 종로5가와 연지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 어의궁(於義宮)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의궁은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사직동으로 인조(仁祖)가 즉위하기 전에 머물던 잠저(潛邸)인 상어의궁(上於義宮)이며 다른 하나는 효종(孝宗)이 탄생하여 거처하던 곳으로 효제동 근방인데 하어의궁(下於義宮)이라 하였다.
조선 정종(定宗)원년(元年)에 종루를 중심으로 800여칸의 행랑(行廊)을 조성하고 시전(市廛)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면서 지금의 종로가 상권지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1905년 동대문시장이 설치되면서 이현시장(梨峴市場)과 연결 상권이 형성되자 종로 전구간은 더욱 빠른 속도로 상업지역으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청량리에서 서대문까지 운행되던 개통 당시의 전차역이 지금의 종로5가 지하철역 부근이었으므로 자연스러운 화물수송을 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종로5가는 일찍부터 한약재 거래장소로 이용하여 지금은 대구 약령시(藥令市)와 함께 한약재 도매시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일대에 대형 도매약국이 생겨난 것은 1958년 종로5가 124-4번지에 보령약국이 개업하면서부터이다. 종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 가로변에는 많은 도매약국이 집결되어 있으며 한약상가는 종로5가 네거리에서 동쪽의 가로변에 밀집되어 있다. 이와 함께 가로변 북쪽 골목에는 이들 한약상가와 건재상을 대상으로 하는 한약제분업소도 밀집되어 있다.
종로5가 네거리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훈련원길 서쪽에 위치한 곳은 동대문시장이 되는데 예지동의 동대문시장과 이어진다. 동대문시장은 1905년 7월에 개설되었다고 하나 18세기 전반에 큰 규모의 시장이 사상도매(私商都賣)의 본거지로 이곳에 형성되고 있었다. 즉 개설 초기에는 동부 이현에 세워졌다고 해서 일명 배우개장이라고도 불리었으나 개설되던 그 해 11월에 시장관리를 위해 광장주식회사(廣藏株式會社)가 설립되면서부터 광장시장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러나 1970년 12월에 종로6가 동대문 맞은 편에 기존의 동대문시장보다 훨씬 규모가 큰 동대문종합시장이 개설됨으로써, 현재 동대문시장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상 종로5,6가 일대의 전체 상가를 가리키며 과거의 동대문시장은 광장시장에 한정되고 있다.
종로5가쪽은 식품 및 잡화상과 신발류 취급점포가 대부분이다.
종로5가의 현 위치는 동쪽은 종로6가와 연해 있고 서쪽은 종로4가와 접해 있으며 남쪽은 청계천로를 경계로 중구 방산동과 이웃해 있고 북쪽은 효제동과 연해 있다. 종로5가의 동서로는 종로가 지나고 있으며 훈련원로와 대학로, 종로가 서로 합쳐지는 곳은 교통의 요충지대이기도 하다. 동대문시장과 중구 을지로6가 방산시장 및 종로6가의 동대문종합시장이 동쪽과 서쪽 남쪽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일찍부터 상업지역으로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는 곳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광장시장 전골목
종로5가 곱창골목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