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에서 탑골공원까지의 거리이다.
종로2가의 동명은 종로의 두 번째 거리가 된다 하여 유래되었다. 종로는 조선시대에 종루가(鐘樓街)·종가(鍾街) 또는 운종가(雲從街) 등으로 불렸다. 종로는 세종로 사거리 황토현에서 종로6가까지의 거리로 네거리에 층루(層樓)를 짓고 누(樓)위에 종(鐘)을 달고 그 아래로 사람과 우마(牛馬)가 다니게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보신각(普信閣)·종각(鐘閣)으로 불려지는 이 누각은 지금의 종로네거리에 있었으나 1915년의 남대문로 개수공사를 위한 도시계획에 따른 종로의 확장으로 원래보다 동남쪽으로 물러나 관철동에 2층 누각으로 새로 지어졌다. 임진왜란으로 종각이 불타고 초석만 남게되자 이곳은 상인들의 노점터가 되었고 그 옆에 종각을 새로 세웠는데 규모가 작았다. 1875년에 원래의 위치로 환원하여 크게 지었다. 이 때의 위치는 1973년 10월지하철공사 도중 유구(遺構)의 일부분이 노출되면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구로 보아 종각은 십자각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통하는 도로가 뚫려 있었음이 확인되었으며 남북 4칸으로 초석의 배치 길이는 43.1척이고 동서 5칸은 60척으로 평면적 70여평 규모였다.
조선시대 종로2가 지명 역시 종로1가와 같이 상업에 관련된 것이 많다. 갓전골은 종로2가와 3가·관철동·관수동에 걸쳐있던 마을로 갓을 취급하는 갓전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일명 입동(笠洞)이라고도 하였다. 바리전골은 종로2가와 공평동에 걸쳐있던 마을로 각종 유기그릇을 파는 바리전이 있은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발리동(鉢里洞)이라고도 하였다. 베전병문골은 종로2가와 3가에 걸쳐있던 마을로 현 탑골공원 동쪽 낙원동 입구에 삼베전이 있은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포병동(布屛洞)이라고도 하였다. 소금전골은 종로2가와 관철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 소금전이 있었기 때문에 소금전골 또는 염수전동(鹽水廛洞), 염동(鹽洞)등으로 불렀다. 종이전골은 포병동 남쪽에 있던 마을로 종이전이 있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지전동(紙廛洞)이라고도 하였다. 청포전 뒷골은 종로2가, 관철동, 남대문로1가에 걸쳐있던 마을로 석승베(三升布)와 양털, 그리고 모자 따위를 파는 청포전 뒤에 있던 마을이므로 청포후동(靑布後洞)이라고도 하였다.
탑골은 종로2가와 낙원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 원각사(圓覺寺)의 10층탑이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탑동(塔洞)이라고도 하였다. 상나무골은 종로2가와 관철동에 걸쳐있던 마을로 우물가에 향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향정동(香井洞)으로도 쓴다. 수전동(水典洞)은 종로2가와 인사동에 걸쳐있는 마을이며, 동곡(東谷)은 똥골로도 부르는데 관철동과 종로2가에 걸친 마을이다.
종로2가의 현 위치는 동쪽은 종로3가와 연해 있고 서쪽은 종로1가와 접해있다. 남쪽은 관철동, 북쪽은 인사동, 공평동과 이웃하고 있다. 종각네거리에서부터 시작되는 종로2가의 면적 대부분 역시 폭 40m의 종로가 차지하며 탑골공원이 동의 동북쪽에 있다. 종로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성견대 (별자리 관측하던 곳)
탑골공원
종가관등
종로YMCA (3.1 독립운동기념터)
경시서터
원각사비
원각사지 10층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