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역에서 종각역까지의 거리이다.
종로1가의 동명은 보신각 종이 있는 거리의 첫머리에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지금 종로1가일대는 성내를 중심으로 하던 옛날 서울에 있어서 동서남북 4정문의 통로를 연결하는 십자가였던 만큼 조선 초기 한양천도 진작부터 수도 서울의 중심지 대시가로 되었으며 저녁에 인정(人定) 아침에 파루(罷漏)로 대종을 쳐서 도성의 입문을 개폐하게 하던 종루(鍾樓)가 세워진 후로는 이 거리를 종루십자가 또는 운종가(雲從街)로 불렀다. 지금의 종로의 명칭도 이 십자가상에 종로가 세워진 데에서 연유하였으며, 또 조선의 한양전도 후 세워졌던 종로는 지금도 위치와 명칭은 바뀌었을 망정 십자가로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아서 세고(歲古)의 여운을 풍겨주고 있다.
종로1가는 조선시대에 시전상가(市廛商街)가 형성되었던 곳이므로 대부분 상업과 관련된 옛 지방이 많다. 주전동(紬廛洞)은 명주를 파는 전이 있고 일명 명주전골이라고도 하였다. 상사동(相思洞)은 청진동과 종로1가에 걸쳐있던 마을로 골목을 좁게 만들어서 사복사(司僕寺)에서 기르는 상사마(相思馬)가 암내를 맡고 뛰면 이 곳목으로 몰아넣고 붙잡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상삿골, 또는 상동(相洞)이라고도 불렀다. 두석동(豆錫洞)은 주석을 파는 전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주석전골이라고도 불렀고 세종로 근방에 있었던 마을이다.
외상사동(外相思洞)은 청진동과 종로1가에 걸쳐있던 마을로 상삿골의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상삿골이라고도 불렀다. 허병동(許屛洞)은 서린동(瑞麟洞)과 종로1가에 걸쳐있던 마을이다. 피마동(避馬洞)은 큰 길을 가다가도 높은 사람의 행차를 멀리서 보면 말머리를 이 골목으로 돌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혜천(惠泉)골은 종로1가와 서린동에 걸쳐있던 마을로 혜정교(惠政橋)우물·두께우물·상삿골우물이라 부르던 우물이 있으므로 혜정교우물골 또는 혜천동으로 불렀다. 조개전골은 종로1가와 서린동에 걸쳐있던 마을로 조개전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 합동(蛤洞)이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종로1가 동쪽은 종로2가와 연해있고 서쪽은 신문로1가와 접해 있으며 남쪽은 서린동, 북쪽은 청진동과 이웃하고 있다. 폭 40m의 종로가 동면적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청진동쪽과 이웃하고 있는 부분만 상업지역으로 활용되고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피맛골 터
교보문고
우포청터
육의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