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헌법재판소 주변 지역이다.
재동은 잿골을 한자로 옮긴 데서 유래된다. 잿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왕위 계승의 뜻을 품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심복인 권람(權覽)의 추천으로 한명회(韓明會)를 만나 단종7년(1453) 단종이 누이 혜경공주(惠敬公主) 즉 영양위(寧陽慰) 정종(鄭淙)의 집에 행차한 기회를 이용하여 무사들을 매복시키고, 어린 단종을 성실히 보필하는 황보인(皇 仁)등을 유인하여다가 참살할 때 이들이 흘린 피로 내를 이루고 비린내가 나므로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초목회(草木灰) 즉 재를 모두 가지고 나와서 붉은 피를 덮으니 동중은 온통 회(灰)로 덮였다. 그 후부터 이곳을 잿골 즉 회동으로 부르게 된 것인데 그 회동의 잿골이 재동의 잿골로 바뀌어지게 된 것이다. 재동을 이룬 옛부락은 잿골 또는 회동(灰洞)으로 부르는 재동과 동곡(東谷) 홍현(紅峴)이 있다. 동곡은 가회동, 재동, 화동에 걸쳐있는 마을로 홍현 동쪽이 되므로 이름이 붙여졌고 동골이라고도 불렀다. 홍현은 붉은 재라고도 하는데 붉은 흙이 많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정독도서관 남쪽, 재동과의 지점부근이다.
현재의 재동은 동으로 계동과 접하고 남으로 율곡로를 경계로 하여 경운동과 마주한다. 서쪽은 안국동, 북쪽은 가회동과 연접해 있고,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83번지를 제외한 재동의 대부분 지역은 조선시대 이래 전형적인 양반집단 부락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거의 대부분이 주택가로 형성되어 있어 서울의 전통마을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곳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헌법재판소
재동 백송
광혜원
풍양조씨 집터
박규수 집터
김창녕위궁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