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탑골공원 옆 인사동 거리이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중부 관인방(寬仁坊)의 「인」자와 대사동(大寺洞)의「사」자를 취하여 지어진 것이다. 『한경지략』권2 각 동조를 보면 「대사동은 곧 탑사동(塔寺洞)인데 옛날에는 원각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석탑만 남아 있다」라고 하였다. 『한경지략』은 순조(1801~1834)연간에 지어진 책인데 이 때에는 대사동과 탑사동으로 혼용하여 불리워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여러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인사동은 대사동에서부터 동명 유래가 되는데 댓절골·사동 등의 이름으로도 불려졌으며 지금의 인사동과 관훈동 사이에 걸친 마을이다. 큰 절인 원각사(圓覺寺)가 있었으므로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향정동(香井洞)은 향우물골·향나무우물골·상우물골로도 불렀는데 우물 옆에 향나무가 있었으므로 명칭이 유래되었다. 이문동(里門洞)은 인사동·종로2가·공평동에 걸쳐있는 마을로 222번지에 순화궁(順和宮)의 이문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붙었으며 이문안이라고도 하였다.승동(承洞)은 인사동과 종로2가에 걸쳐 있는 마을이고 그 옆으로는 수전동(水典洞)이, 승동이 북쪽에는 과부 다섯명이 살았다는 오과붓골이 있었다. 낙원동과 인사동에 걸쳐 있는 부락은 원골 혹은 원동(園洞)이라 하였다.
인사동을 탑동(塔洞)·사동(寺洞)·탑사동(塔寺洞)이라는 명칭으로 오랫동안 불러왔던 것은 대광명전(大光明殿)을 비롯하여 400여칸 규모의 원각사에 딸린 석탑이 유명했기 때문이다. 탑골공원에 현존하는 이 석탑은 원각사가 낙성된 후에 세워졌고 이때부터 대사동이라는 동명보다 탑과 관련된 동명으로 불려졌던 것이다.
인사동은 동으로 낙원동, 남으로 종로2가와 서쪽의 공평동, 북쪽의 관훈동과 서로 접해 있다. 인사동길과 태화관길이 서로 교차하는 인사동은 동의 서쪽을 재개발하여 상업업무 중심지역이 되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인사동길
서울중심 표시석
승동교회 (3.1독립운동 기념터)
태화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