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와 종로5가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이화동의 동명은 지금 이화동 2번지에 있던 이화정(梨花亭)에서 유래되었다.
이화동의 옛마을로는 동숭동과 이화동에 걸쳐있던 쌍계동(雙鷄洞)이 있다. 기묘한 암석 울창한 수림에 두줄기의 맑은 시냇물까지 있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삼청(三淸) · 인왕(仁王) · 쌍계(雙鷄) · 백운(白雲) · 청학(淸鶴)이라 하여 도성안의 5대 명소 가운데 세 번째로 꼽혔다.
효제동은 효젯골 · 병골 · 호동(壺洞)이라고도 불렀는데 이화동 25번지 일대의 마을이다. 선조 때의 부제학 유숙(柳肅) · 승지 유섭(柳燮) · 유활(柳活) 3형제가 서로 처마를 잇대어 살면서 부모 모시기를 한결같이 하므로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효자형제가 모여사는 집이라 부르던 것이 효자가(孝子家), 효제가(孝悌家), 효제동(孝悌洞)으로 변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동네의 모양이 병처럼 생겼으므로 병꼴, 한자로 호동(壺洞)이라 하였다.
느릿골은 널을 만드는 장생전(長生殿)이 있으므로 붙여진 동명이고 그 서쪽에 놓여있던 다리를 장생전교(長生殿橋) · 장경교(長慶橋) · 장교(長橋)라고 불렀다.
이화동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조성해 주는 낙산은 이화동, 동숭동, 창신동,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구 보문동, 삼선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낙타와 같으므로 낙타산(駱駝山), 낙산, 타락산(駝駱山)이라 하기도 했다. 명종 때 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으로 낙산, 서로 아현을 가리키며 반드시 붕당(崩黨)이 생것 것이라 했는데 그의 예언대로 동인(東人)은 「각마(各馬)」로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서인(西人)은 「혁안(革安)」이란 뜻으로 인조반정 후에 안정되었다.
이화동은 동쪽으로 창신동, 남쪽으로 충신동, 서쪽으로 연건동과 북쪽의 동숭동으로 둘러싸인 마름모꼴의 지형이며 낙산(駱山) 정상의 서남쪽 산록에 형성된 마을로 전형적인 주택지구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이화장
석양루터
장생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