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과 청계천 사이의 지역이다.
인의동에서 종로4가를 지나 동남쪽으로 향하면 그 일대가 예지동인데 동학(東學)이 근처에 있으므로 유학의 대강(大綱)인 효제(孝悌), 충신(忠信), 인의(仁義), 예지(禮智)의 이름을 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예지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옛마을로는 냇골 혹은 냇게라고도 하는 마을이 있었다. 이것은 청계천변에 위치하므로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냇골의 윗쪽에 자리잡은 마을은 상천변동(上川邊洞) 혹은 웃냇골·웃냇개라 하였다.
중구 주교동 146번지와 예지동 135번지 사이에는 효경교(孝經橋)가 있었다. 효경다리·효경교·효교(孝橋)라고도 불렸는데 『동국여지승람』『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영풍교(永風橋)로 되어있다. 부근에 소경들이 많이 살아서 소경다리라 하던 것이 변해서 새경다리로 되었으며 「도성지도(都城地圖)」에서는 효경다리로 표기하였다. 서쪽 교각에 있던 「정사금영개조(丁巳禁營改造)」의 각자(刻字)는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없어졌다.
석수방동(石手房洞)은 돌을 다듬는 석수방이 있으므로 이름이 붙여졌으며 석수방골이라고도 하였다. 하피마동(下避馬洞)은 아래피맛골이라고도 하였고, 옥방(玉房)이라고도 불렀던 옥방골에서는 비녀, 가락지고리 따위의 장식을 파는 옥방이 있었다. 중붓골이라고도 하는 중부동(中部洞)이 있었으며, 칠방동(漆房洞)은 칠을 하는 칠방이 있으므로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예지(禮智)」라는 동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인의동의 「인(仁)·의(義)」와 함께 오상(五常)의 두 조항인 「예(禮)」와 「지(智)」를 취한 것이며, 이 부근 일대가 예로부터 큰 상가지대였던만큼 상권을 형성해나가는 데에도 특별한 예절과 지혜가 필요했던 것을 의미한다. 박제가(朴齊家)의 「한양성시전도가(漢陽城市全圖歌)」 가운데
이현(梨峴)과 종루(鐘樓) 그리고 칠패(七牌)는 온갖 공장(工匠)과 상인들 많이도 모이는데
도성중(都城中)에서도 유명한 3대시장이라네. 일만물화(一萬物貨) 이(利)를 따라 수레가 줄이었네.
라는 문장 중에서 이현시장은 배오개시장 혹은 배우개장이라고도 하였다. 동대문시장의 전신이 되는 이 배오개장은 인의동의 이현을 깃점으로 한 남측일대에 형성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많고 차마(車馬)가 연이어 다니는 곳이었으므로 종루 앞과 남대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유명하였다.
예지동은 북쪽으로 종로4가와 동쪽은 종로5가에 접해있고 남쪽은 청계천로를 경계로 중구 주교동과 마주보며 서쪽은 장사동과 연이어 있다. 배오개시장이 있어 일찍부터 상권이 형성되었던 예지동에는 그 맥락을 이어 오늘날에도 광장시장과 귀금속, 시계 도매상가가 줄지어 있는 반면 거주인구수는 극히 적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광장시장
예지동 시계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