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서 성북동방향이다.
명륜동1가는 1936년 4월 1일 유학(儒學)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명륜학원이 있는 동이라 하여 명륜정1정목(明倫町1丁目)이라 한데서 비롯된다. 명륜학원은 국권이 탈취된 후 성균관이 경학원(經學院)으로 바귀면서 1930년 봄에 부설하였다.
명륜동1가는 조선시대에 있었던 여러 개의 자연부락들로 구성되었다.
성균관 서북쪽의 개천이 있는 곳에 있던 부락은 갯골 또는 포동(浦洞)이라 한다. 성균관길을 다라 북쪽으로 올라가 우암길과 마주치는 1통 일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도덕골 혹은 도덕동(道德洞)이라 부르던 곳은 성균관 동북쪽의 3통 일대에 해당되는데, 성균관에서 인륜의 대도를 강론하므로 그 뜻을 따라 마을이름을 지은 것이다. 또한 명륜동 3가쪽 혜화국민학교 근방에 웃우물이 있다하여 상정동(上井洞) 또는 웃우물골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효종 때 유학자 우암 송시열이 살았다는 명륜동1가 2번지 일대는 그의 성을 따서 송동(宋洞)이라 하였다. 명륜동1가 78번지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북쪽 부근을 수지동(水之洞)이라 하였고, 식당동(食堂洞) 또는 식당골이라 부르던 곳은 성균관 동쪽으로 83·92번지 일대가 된다. 식당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것은 성균관에서 과거를 볼 때마다 이들 수험생을 대상으로 재빨리 식당이 차려졌기 때문이다. 식당동에 있던 우물은 마을 이름을 따서 식당우물이라 하였다.
피마동(避馬洞)은 피맛골이라고도 하는데 명륜동1가와 명륜동2가의 경계지역 쯤이다. 임금이 성균관에 거둥할 때 군관들이 말을 타고 호위, 시종하게 되는데 임금이 성균관으로 들어가면 무관들인 호위군관들은 감히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성균관 동쪽 이곳에서 말을 묶어두고 임금이 나올 때까지 피해 있었으므로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륜동1가 2번지에 있던 북묘(北廟)부근의 마을은 흥덕골이라 하였다. 북묘 서쪽과 북쪽에 걸친 마을인데 산 1번지와 북묘 일대에 걸친 곳에 흥덕사가 있어 동명이 유래되었다. 흥덕골은 산수가 매우 맑고 아름다운 가운데 온갖 꽃나무와 화려한 누각, 큰 연못들이 있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이 잇달아 피어서 늘 꽃동산을 이루었다. 이에 흥덕동의 아름다움은 경도십영의 하나로 표현되어 흥덕골 꽃구경(興德賞花) 혹은 흥덕골 연못구경(興德賞蓮)으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흥덕동에서 시작하여 연건동·이화동에 있는 장경교(長慶橋) 밑을 지나서 오간수교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를 흥덕동천(興德洞川)이라 하였다. 경도십영의 이곳 흥덕동의 뛰어난 경치는 흥덕동천이 구비구비 감돌아 지나면서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는데 피마동 부근에 오면 말이 쉬는 동안 말도 씻기고 물도 마시게 만들었으며 식당동 사람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었다.
길다랗게 생긴 명륜동1가의 중허리를 꿰어차고 지나가 명륜3가동과 경계를 짓는 길은 성균관길이다. 폭 10m∼15m 길이 900m로 우암길과 이어진다. 우암길은 명륜동1가와 혜화동의 경계를 이어준다. 조선시대부터 전형적인 주거지역으로 손꼽아왔던 명륜동1가의 교육기관으로는 혜화초등학교가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군자정
북묘터
중앙학림 3.1독립운동기념터
송시열집터
우암기각증주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