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ffbeat Explorer/1. 종로구

20. 도렴동

728x90

세종문화회관 뒷편이다.

도렴동은 조선초기에 도렴서(都染署)라는 관아가 있었다고 하여 이름한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처음 도렴서를 설치한 것은 태조 원년(1392)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아직도 고려왕조의 옛도읍 개성에 있을 때의 일이요, 이곳 지금 도렴동에 도렴서가 설치되었던 것은 태조 3년에 한양천도가 실현되고 이듬해에 경복궁이 준공된 다음 즉 태조 4·5년경의 일일 것으로 보여진다.
「동국여지비고」권1 혁파공서조(革罷公署條)를 보면, 도렴서라는 관아는 조선에서 창설한 것이 아니요, 이미 고려왕조 때부터 있던 관제를 그대로 인존(因尊)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도렴서는 그 관부명이 표시하는 것처럼 주로 궁중진헌용 직조물의 염색을 맡았던 관청으로서, 고려의 제11대 문종 때에 정8품의 영1인, 정9품의 승2인 외에 다시 사(史)4인, 기관(記官) 2인을 두어서 그 일을 맡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충렬왕 34년에는 잡직서라는 관청과 병합하여 직염국으로 개편하기도 하였지만 충선왕 2년(1310)에 다시 도렴서로 복원하여 말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조선에서도 고려시대의 직제, 임무 등을 그대로 계승하여 한양천도 후에 도렴서를 궁궐에서 가까운 이곳에 설치하였고, 70여년은 지나서 세조 6년(1460)에는 중부수진방(壽進坊)에 있는 제용감(濟用監)에 병합되었다.

1914년 동리구역을 조정 개편할 때에는 도렴서가 있는 일대의 마을인 도렴동, 공조(工曺)의 뒤가 되므로 붙여진 공후동(工後洞) 혹은 공조뒷골, 적선동 170번지에 궁중에서 필요한 술과 감주를 공급하는 관아가 있었고, 그 주변의 부락은 사온동(司 洞) 혹은 사온섯골, 의영고가 있던 주변의 마을은 의영곳골 혹은 의영동(義盈洞)의 구역을 합하여 도렴동을 신설하여 지금에 이른다.

현재의 도렴동은 북으로 내자동길을 경계로 하여 적선동과 남으로는 당주동, 서쪽으로 내수동, 동쪽은 세종로로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지형이다. 동(洞) 면적의 60%이상이 세종문화회관의 주차장과 경희궁 시민공원 등으로 되어 있고 실제 생활주거 면적은 30% 정도밖에 안된다. 도렴동 45번지에는 교통방송국이 위치해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세종문화회관

사역원 터

도렴서 터

의영고 터

728x90

'Offbeat Explorer > 1. 종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 동숭동  (0) 2021.01.03
21. 돈의동  (0) 2021.01.03
19. 당주동  (0) 2021.01.02
18. 누하동  (0) 2021.01.02
17. 누상동  (0) 202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