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약속을 잡을때 종로에서 보자고 하면 대개 관철동이나 관수동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관수동은 피아노거리 옆 블록으로 종로3가역과 청계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관수동은 1914년 4월 1일에 경성부제 실시에 따라, 이전 장통방의 입동, 비파동, 창곡동, 상판교의 각 일부를 병합해서 청계천의 유수(流水)를 관망(觀望)한다는 뜻에서 관수동이라 하였다. 관수동을 이룬 자연부락으로는 갓전골·도깨빗골·벙거지골·비팟골·웃너더릿골·작은갓전골·준천삿골이 있다. 이 가운데 도깨빗골은 관수동 91-1번지 한국전력 청계송전소가 있는 서쪽 첫째 골목으로 도깨비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이름이 붙여졌다. 개화기 때 들어온 전기불을 흔히 도깨비불이라 하였으므로 한국전력의 변전소가 이곳에 처음 세워질 때 전기를 빗대어 도깨비라 하였다.
작은 갓전골은 관수동과 관철동 사이에 있는데 갓전골에 딸린 부락이어서 명칭이다.
1914년에 관수동이 될 때 병합된 입동(笠洞)일부는 종로2가·종로3가·관수동에 걸쳐 있던 갓전마을(笠洞)이었다.
창곡동은 벙거짓골이라고도 하는데 벙거지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파동(琵琶洞)은 비팟골 또는 비앗골이라고 하는데 관수동과 종로3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비파정(琵琶亭)이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 비파정은 관수동에 있던 정자로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청년들이 모여 돌을 가지고 편싸움을 하던 이른바 석전(石戰)장소로 남대문 밖 우수재, 동대문 밖 안감내, 신당동의 무당내와 함께 편쌈 터로 이름났던 곳이다.
관수동은 청계천의 유수(流水)를 관망한다는 뜻에서 붙인 동명으로 관수교라는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는 고지도(古地圖)인 「수선전도(首善全圖)」와 「서울지도」에 교량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관수동은 일제 때부터 중국인이 많아 거주한는 중국인가(中國人街)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현재 관수동은 상업지구로서 대부분이 상가와 유흥업소가 많다. 관공서는 없으며 관수동은 59번지에 서울극장이 있고, 91번지에는 한국전력 청계송전소가 있다.
관수동의 현재 위치는 동쪽으로 돈화문로를 경계로 하여 장사동과 마주보며 서쪽은 관철동과 북쪽은 종로3가와 남쪽은 청계천로를 경계로 중구 수표동, 입정동과 마주하고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수표교 터
청계천변 납작 태화정
신간회 창립 본부터
대관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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