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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Explorer/서울 이야기

1-5. 종로구> 공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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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 종로타워에서 제일은행, 공평동꼼장어 있는 곳까지이다.

공평동의 동명은 중부 견평방(堅平坊)의 전동(典洞), 금부후동(禁府後洞), 발리동(鉢里洞), 이문동(里門洞)의 각 일부와 괴동(槐洞)을 병합하여 견평방에 있는 금부(禁府)에서 공평하게 재판을 처리하다는 뜻을 따라 1914년 동명 제정 때 붙여졌다. 공평동 지역은 옛날의 운종가 즉 종루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도 그 남쪽 종로2가의 지역이 상가로 번창하고 있지만, 공평동은 옛날부터 종로 시전의 일부분으로 유명하였다. 옛날의 동계(洞契)관계를 보더라도 발리전계(鉢里廛契)에 바리동이 있고, 어물전계(魚物廛契)에 이문동(里門洞)과 후동(後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승동(承洞)이 있었는데 이들 동(洞)중에 바리전, 즉 유기전이 있다 하여 이름하였던 바리등이나 어물전계에 속하였던 전동(典洞), 이문동 등은 현재의 종로2가의 구역과 양분되어 있다.

주단전(綢緞廛)이 전의감동 입구 동서 양쪽에 있는데 곧 종루가 북쪽의 약 42방 지점으로 중국 비단·색비단 등을 판다. 내어물전은 이문의 동서 양쪽에 있고 각종 건어물을 판다. 유기전은 바리전이라고도 하며 내어물전 서쪽 행랑 뒤에 있고 각종 유주기명(鍮鑄器皿)을 판다. 은면전(銀麵廛)은 전의감동 입구 동쪽에 있다. 모전(毛廛)은 속칭 우전(隅廛)이라고도 하는데 길 모퉁이에 설치되었으므로 그 이름이 연유되었고 토산과실을 판다.

그런데 이들 시전은 모두 종로2가 이북이며 공평동 이남의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이 지역에 상권이 형성되자 이들 시전을 검찰하기 위한 경시서(京市署)를 1392년 공평방에 설치하였다. 1466년에는 평시서(平市署)로 명칭이 바뀌어졌는데 시전에서 사용하는 척(尺)·두(斗)·저울과 물가의 등락을 관할하였다.

경시서의 관원으로는 영(令)·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 등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는 서원(署員) 5명, 고직(庫直) 1명, 사령(使令) 11명이 있었는데 고종 31년에 폐지되었다.

공평동에는 괴동(槐洞) 혹은 회목동(檜木洞)·회화나뭇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회화나무가 있어서 동명이 붙여졌다. 공평동·청진동·견지동에 걸친 마을로 의금부(義禁府) 뒤쪽에 있었던 금부뒷골은 금부후동이라고도 하였다. 공평동 5번지에 중앙집산장이라는 시장이 있었던 것도 이 일대가 일찍부터 상권이 형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공평동 일대는 도심지의 재개발사업에 따라 옛 건물들이 헐리고 대신 큰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의금부자리에는 제일은행 본점을 비롯하여 공평빌딩·한미빌딩 등 크고 작은 업무용 빌딩들이다. 다양한 상가와 관광회사들이 즐비하며, 명보아트홀이라는 극장이 새로 개관되어 영화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러한 공평동은 인사동과 낙원상가 또한 명동 입구로 가는 길목이 되므로 많은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으로 항상 붐비고 있다. 폭 30m, 연장 550m의 우정국로와 폭 15m, 연장550m의 삼봉길, 폭 8m, 연장720m의 태화관길이 서로 교차하고 있으므로 공평동과 사통팔달한 교통로임을 대변해준다. 공평동의 위치는 동으로 인사동, 서로는 청진동과 접해 있고 북쪽은 삼봉길과 태화로를 경계로 하여 견지동과 마주보며 남으로는 종로를 경계로 서린동, 관철동과 마주한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구 화신백화점, 종로타워

이문 터

김상옥 의거터

의금부터

SC제일은행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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