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본사 건물 뒷쪽으로 가회동과 창덕궁 사이에 있다.
계동은 원래 계동, 가회동, 원서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 이 지역에 제생원(濟生院)이 있어서 제생동이라 하다가 변하여 계생동(桂生洞)이 되었는데 1914년 동명제정시 계생동의 명칭이 기생동(妓生洞)과 비슷하다 하여 계동으로 줄여서 고쳤다. 영조27년(1751)에 간인(刊印) 배포한 수성책자(守城冊子)중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북부 양덕방(陽德坊) 관내의 계생동이 대개 현위치에 기입되어 있음으로 보아서 영조 때 또는 그 이전부터 이 곳이 계생동으로 칭호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 순조 말기의 편자로 인정되는 『한경지략(漢京識略)』각동조(各洞條)에서는 계생동에는 제생원이 있으므로 제생동이라도 칭하였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계생동이 되었다. 또 계생동에는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의 옛집이 있었다라 하고 궐외각사조(闕外各司條) 제생원에 보면 지금 북부 계생동을 살펴보면 곧 옛날 제생원이 이곳에 있었던고로 제생동이라 불려졌으며 제와 계의 음이 서로 혼용되는 까닭에 계동이라 칭한다 하였다. 여기에 의하여 계생동의 원명은 제생동이요, 그 제생동이라는 동명의 기원은 제생동이 이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시작되었으며 제와 계의 한자음이 서로 혼동됨으로 하여 나중에는 제생동이 계생동으로 전칭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계동의 동명 유래가 되는 제생원은 태종 6년(1397) 조준(趙浚)의 건의에 의해 지방의 향약재(鄕藥材)를 수납하여 혜민국(惠民局), 동서활인서(東西活人署)와 같이 궁민(窮民)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현재의 계동은 동으로 원서동, 서쪽은 가회동과 재동이, 북으로는 삼청동과 서로 닿아있고 남으로 율곡로를 경계로 운니동과 마주보고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현대건설
중앙고등학교
제생원터
유심사터 (3.1 독립운동 기념터)
경우궁터
석정골 보름우물터
김성수 집터
여운형 집터
노백린 집터
배렴 집터
삼일운동 책원지
승문원터
홍문관터
이준경 집터
'Offbeat Explorer > 서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종로구> 관수동 (0) | 2020.12.30 |
---|---|
1-5. 종로구> 공평동 (0) | 2020.12.29 |
1-3. 종로구> 경운동(Gyeongun-dong) (0) | 2020.12.29 |
1-2. 종로구> 견지동(Gyeonji-dong) (0) | 2020.12.29 |
1-1. 종로구> 가회동(Gahoe-dong) (0) | 2020.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