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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Explorer/서울 이야기

1-9. 종로구> 교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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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사거리에서 독립문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현재는 경희궁 자이 앞쪽 상가가 있는 곳이다.

교남동의 동명은 지금의 교남동 100번지 북쪽, 곧 교남파출소 앞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 하여 다리의 남쪽 동네를 교남동, 북쪽을 교북동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교남동의 동명 유래가 되고 있는 석교(石橋)는 1830년에 유본예(柳本藝)가 지은 『한경지략(漢京識略)』에 석교, 1864년에 김정호(金正浩)가 만든 「대동지지(大同地志)」에는 초교(草橋), 고종 초에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首善全圖)」에는 교량의 표시만 되어 있고 1902년 로얄 아시아틱소사이어티에서 간행한 「서울지도」에는 석교라고 표시되어 있다. 또 다리의 이름을 돌다리, 석다리라고도 불렀던 것으로 보아 「수선전도」제작 당시에는 이미 석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교는 교북동·천연동·교남동에 걸쳐 있어서 지금의 의주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셈이 되었다.
석교가 있으므로 돌다리골 혹은 석교동이라 하였는데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곳에는 언제나 장시(場市)가 형성되기 마련이듯 이 석교동에도 무악재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가꾼 각종 농산물을 다리께에 펼쳐 놓아 난전(亂廛)이 형성되곤 하였다.

이 난전은 지금의 영천시장(靈泉市場) 끝과도 연결되어 서대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였으며, 1898년 서대문~청량리간 전차궤도가 부설되고 난 후 독립문 로터리 부근에 있던 전차종점과 가까운 이 일대는 자연스레 시장(市場)으로 번영 발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또 교남동과 평동·충정로1가에 걸쳐 있는 마을을 평동 혹은 거평동(居平洞)이라 하여 교남동의 중심이 되었다. 실제로 교남동의 서남쪽 끝에 해당되는 이 거평동의 지대 자체가 낮고 평편한 곳에 있었으므로 살기 편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거평동과 바로 이웃한 마을을 찬우물골·냉정동(冷井洞) 혹은 줄여서 냉동(冷洞)이라 하는데 찬우물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물맛이 매우 차며 한여름에도 얼음조각이 떠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의주로가 일대를 통과하여 도로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 되었지만 의주로가 개설되기 전만 하더라도 찬우물골에 있는 어떤 우물이라도 차갑고 달아서 한여름 나그네의 목을 충분히 적셔줄만 했다고 한다.

또 개천가에 있는 마을은 천변동(川邊洞) 혹은 개천께라 하였는데 교남동·송월동·홍파동에 걸쳐 있었다. 복개가 된 이곳의 일부를 현재 유료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의 교남동은 북쪽으로는 사직동, 세종로동과 동쪽으로 중구 정동, 서쪽으로 서대문구 영천동, 옥천동, 천연동으로 남쪽은 냄천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하며 교남동 이외에 평동, 송월동, 홍파동, 교북동, 행촌동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경희궁 자이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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