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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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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평동 서대문역 적십자병원쪽 방향이다. 평동의 동명은 거평동(居平洞)이라고 부르던 이름이 줄어서 된 것이다. 평동의 「평」은 「原」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서대문을 나서서 무악재에 이르기까지는 거의 평탄한 길이고 서쪽의 안산(鞍 山)기슭과 인왕산 사이에 낀 분지형에 속하는 지역이다. 평동은 조선초부터 반송방(盤松坊)에 속해 있으며 갑오경장 때 지하계(池下契)의 여러 동 중 평동이란 이름이 처음 나타난다. 일제 1914년 4월 1일 경성부의 동, 정 명칭 및 구역을 공포할 때 평동 일부는 죽첨정(竹添町) 1정목과 교남동에 편입되고 그 일부가 평동이 되었으며 그 뒤 일제가 동, 정, 정목 등으로 불리던 명칭을 동을 폐지시켜 버리므로 해서 평동정이라 하게 되었다. 광복후 1946년 10월 1일을 기하여 왜식동명을 ..
79. 팔판동 청와대 동편 경복궁쪽으로 나오는 지역이다. 팔판동의 동명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여덟명의 판서가 살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순조년간(1801~1834)에 저술된 『한경지략(漢京識略)』권2 각동조(各洞條)에도 팔판동의 유래가 되었던 8명의 판서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고 있다. 단지 팔판동은 서울에서도 자연 지리적 조건이 좋기로 유명한 곳인 만큼 8명의 판서가 함께 살았다는 것이 그저 우연히 발생한 전설(傳說)에 그친 것이 아닐 것 같다. 이곳은 옛부터 「팔판서골」이라 하던 곳으로 아마도 주요 관아가 경복궁 남쪽에 위치해 있어 직주(職住)근거리의 편의성에 따라 경복궁 동북쪽에 인근하여 있는 이곳에 판서들이 주거지를 택하였을 가능성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복개된 삼청동길이 삼청동 계곡에서부..
78. 통인동 경복궁역에서 청운동 가는 방향 지역이다. 통인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곳 옛 마을의 하나인 한성부 북북 준수방 통곡과 인왕산의 글자를 각각 한자씩 따온 데서 유래되었다. 1936년 4월 1일 서울의 동명을 일제식의 정(町)으로 일원화 하면서 통동(通洞)에서 통인정(通仁町)으로 바뀌어 졌다. 이는 이웃해 있던 통의동(通義洞)이 1914년의 동명 개정 때 통의방(通義坊)의 방명(坊名)을 그대로 따서 동명으로 삼은데 비해 통인동은 이곳을 이룬 옛 자연부락인 통곡(通谷)의 이름을 따서 통동이라 하다가 1936년 동명 개칭 때 이웃한 동의 이름을 유교의 기본 덕목이 되는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두 번째인「의」를 사용한 대신 통동은 그 첫째 근본이 되는「인」을 넣어 통인정으로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인의동..
77. 통의동 경복궁 궁궐 성곽 서편지역이다. 통의동의 동명은 조선시대에 이곳이 한성부 북부 의통방(義通坊)이었다가 갑오개혁 때 통의방(通儀坊)으로 바뀐데서 유래된다. 통의방은 태조5년(1396) 4월 한성부에 명하여 한성5부의 각 방명표(坊名標)를 세우게 할 때 북부 10방 중 하나로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데 이 의통방이 곧 지금의 통의동을 중심한 지역이었다. 의통이란 방명은 그 후 500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관제와 지방구역의 개정이 있으면서 종래 5부(五部)를 5서(五署)로 고치고 방동명(坊洞名)의 일부 개정이 있을 때 종전의 의통방이 통의방으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의 동명 제정으로 종전 통의방을 중심지역으로 한 동명으로 바꾸어졌다. 통의동을 형성하고 있는 마을로는 흰 소나무가 있..
76. 충신동 동대문과 종로5가역 사이 지역이다. 충신동의 동명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동의 서북쪽에 조선시대 유학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있고, 동쪽으로는 4부학당의 하나인 동학(東學)이 있었기 때문에 유학이 성하던 곳이라 하여 유학의 8대 강목인 인의예지충신(仁義禮智忠信)을 각 두글자씩으로 한 동명을 만들었다는 설과 1914년 경성부의 동명 제정 때 방명(坊名)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충신의 일부 지역이 조선시대 숭신방(崇信坊)에 해당되므로 「숭」의미가 비슷한 「충」을 써서 충신동이 되었다는 설이다. 효제동과 충신동의 경계가 되는 도로는 대학천을 복개하여 만들었다. 이 때문에 충신동에는 여러개의 다리가 놓였으며 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았다. 충신동 214번지와 종로6가 238번지, 효제동 164번지..
75. 체부동 경복궁역 세종마을 북쪽지역이다. 북쪽으로는 통인동(通仁洞), 동쪽으로는 통의동(通義洞), 남쪽으로는 내자동(內資洞), 서쪽으로는 필운동(弼雲洞)과 접해 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 북부 순화방(順化坊), 1751년(영조 27)에 한성부 북부 순화방 사재감계(司宰監契)에 속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한성부 북서(北署) 순화방 하패계(下牌契) 구곡동(九曲洞)·체부동(體付洞)·누각동(樓閣洞) 등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한성부 북서 순화방 하패계 구곡동·체부동과 누각동 일부가 통합되어 체부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체부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체부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74. 청진동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 지역이다. 청진동은 이곳은 조선시대 한성부 징청방(澄淸坊)과 수진방(壽進坊)의 일부였던 관계로 방명에서 한자씩 따온데서 유래되었다. 청진동의 동명이 유래된 수진방에는 수진궁이 있었다. 수진궁은 조선 예종의 둘째아들인 제안대군 현( )의 사저로 그 뒤 어려서 죽은 대군(大君), 왕자, 공주, 옹주 및 자손이 없는 후궁들의 제사를 지내는 궁(宮)이 되었다. 지금의 수송동 삼양식품(전 종로국민학교) 동북방과 종로구청의 일부에 해당된다. 또 징청방의 징청은 난세를 다스려 밝게 한다는 뜻이다. 청진동의 자연부락 명칭 및 지명은 다음과 같다. 금부뒷골은 공평동과 청진동을 경계로 하는 길의 청진동 쪽에 있는 마을로 금부후동(禁府後洞)이라고도 하며 공평동 94번지에 의금부가 있었기 때문에 의금부..
73. 청운동 청와대 북서쪽 지역으로 자하문터널 가기 직전이다. 청운동의 동명은 이곳에 원래 있던 청풍계(淸風溪)와 백운동(白雲洞)의 첫글자를 따온 데서 유래된다. 동명이 유래된 청풍계와 백운동은 도성 북쪽 인왕산과 백악사이 자하문(창의문)고개의 남쪽에 있다. 이곳은 깊숙하고 그윽한 계곡에 맑은 수석이 청풍과 함꼐 항상 백운으로 덮여 있었다. 백운동에는 조선 초기 중추부 이의념(李義念)이 살자 그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성의 서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백운동은 산도 높지 않고 골짜기도 그렇게 깊지 않지만 푸른 송림과 등라덩굴 사이로 맑은 냇물이 소리내어 흐르고 맑은 하늘에는 아침 저녁으로 점점이 떠있는 흰구름이 아름다워 주변의 경관과 함께 어우러지므로 옛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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