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옆 청운효자주민센터 남쪽지역이다.
효자동의 동명은 이곳에 있던 원래의 자연부락 효곡(孝谷)에서 유래되었다. 효곡은 고종31년 갑오개혁때에도 동명중의 하나로 보이는 것으로서 그 유래가 오래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동명은 원래 이곳에 임천조씨(林川趙氏)의 쌍효자가 나서 유명하였기 때문에 「쌍효잣골」「효잣골」로 불러온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쌍효자란 조원(趙瑗)의 아들 희정(希正)과 희철(希哲) 형제를 말함이며 나라에서 이들에게 내린 정문(旌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14년 이래로 다른 동리들의 일부까지 포함하여 「효자동」으로 불러오게 되었으며 일부에서는 효에 대한 새로운 일식을 이야기하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윤리의 관념이 많이 변천된 오늘에 있어서도 효자동의 동명은 새삼 옛날의 윤리관과 가정미담을 다시금 상기하게도 한다. 효자동을 이룬 자연부락은 효자동과 궁정동에 걸쳐있는 곳에는 더운 우물이 있어서 더운 우물골 혹은 온정동(溫井洞)으로 불렀다. 궁정동(宮井洞)의 육상궁(毓祥宮) 동쪽에 해당되는 효자동 138~145번지일대는 동곡(東谷), 동골이라 하였고, 육상궁 동쪽 동네라는 뜻이다. 동골의 좌측에 있는 동네는 육상궁동, 육상굴이라 하였다.
효자동, 창성동, 통의동에 걸쳐 있는 마을은 장동(壯洞)이라 하였는데 처음에는 창의동(彰義洞)이라 하다가 변해서 장의동(壯義洞)이 되고 다시 장동으로 줄여서 불렀는데 지금의 효자로를 따라 서쪽으로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효자동과 창성동에 걸쳐있는 마을은 흰갯골 혹은 백구동(白拘洞)으로 불렀는데 경복궁 가까이에 있던 이 동네에서는 흰털을 가진 개를 많이 길렀기 때문이다.
현재의 효자동은 동쪽으로 효자로를 사이에 두고 세종로의 경복궁과 접하고 북쪽으로 궁정동과 인접하고 서쪽은 옥인동과 남으로는 창성동과 이웃하고 있으며, 종로구의 북부지역에 위지해 있다.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효자동은 조선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러 번성했던 곳이며 일제 때에도 비교적 한국인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다. 지금의 주택가도 일제 초에 대부분 구획정리된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차노선이 효자로에 개설되면서부터 1968년 전차궤도가 철거되기까지, 서민, 학생들이 세검정계곡의 맑은물과 능금, 자두 등의 꽃구경 또는 과일을 맛보기 위해 효자동 종점에서 내려서 걸었기 때문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효자동을 통과하였다. 한때 효자로는 한적한 길이었으나 1993년 2월 25일 청와대주변 개방이후에는 많은 시민들이 이 길을 이용하고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쌍홍문터
환관집단거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