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와 익선동 사이의 길이다.
권농동은 1914년 4월 1일 동명 개정에 따라 이 곳에 있던 채소재배를 권장하는 농포서(農圃署)의 이름을 따서 권농동이라 하였다. 권농동은 농포동, 마동, 수문동, 숭문동이 모여서 이루어진 동명인 만큼 농사와 관련이 깊다. 농포동은 돈화문 밖 동쪽에 궁중에서 필요한 내농포(內農圃)가 있어서 붙여진 동명인데 농포안이라고도 하고 농파니라고도 불렀다. 지금 창덕공원으로 조성된 일대가 농포안이었다.
마동(麻洞)은 마전골 혹은 마전동(麻田洞)이라고도 하는데 와룡동, 봉익동, 권농동에 걸쳐 있는 마을로 대략 권농동 185~190번지 일대가 된다.
창덕궁에서 흘러내린 물이 종묘전교(宗廟前橋)와 파자교(把子橋) 사이로 들어가므로 냇가의 폭이 넓고 반석도 많았다. 이 때문에 빨래터로 최적이어서 끊임없이 마전을 하였는데 한자로 쓴 마전(麻田)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수문골은 권농동과 와룡동에 걸쳐 있는 마을로 대략 두 동의 경계부근이 된다. 창덕궁에서 종묘 쪽으로 흐르는 냇물의 아랫쪽에 창살같이 한 문을 달아 놓았으므로 수문동(水門洞) 혹은 수문골이라 하였다. 승문원골은 승문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농포동은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 주인공의 성장배경 장소로 설명되었다.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농포동은 북촌 양반들의 출입이 무상했기 때문에 양반사회의 부조리를 파악하기 쉬운 곳이었다. 또 일설에는 『홍길동전』의 저자가 이곳에 살았다고도 한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재질이 뛰어나고 학식이 풍부하나 재상집의 서자로 태어난 까닭에 천대가 심하므로 집을 나가 활빈당(活貧黨)의 괴수가 되어 탐관오리와 토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못살게 하고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다가 나중에는 먼 섬으로 나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권농동은 동쪽으로 훈정동의 종묘와 남쪽은 묘동, 서쪽은 와룡동과 접하며 북쪽은 와룡동의 창덕궁과 접하고 있어서 도심에는 보기 드물게 숲속에 싸여 있는 동으로서 폭 30m, 총연장 3,000m의 율곡로가 통과한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내농포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