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 동북쪽 북한산이 있는 지역이 구기동이다.
구기동은 구텃굴이라는 동명을 한자로 옮긴데서 유래된다. 조선시대 한성부 상평방(常平坊)내 구텃굴이었다가 일제 때 이르러 1914년 4월 1일 경성부제 실시에 따라서 세곡(細谷)을 병합하여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로 하였으며, 광복후 1949년 8월 13일에는 다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구기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55년 4월 18일에 서울특별시 동제실시에 의하여 구기동은 법정동인 평창동과 함께 행정구역명인 평창동에 속하여 되었는데 1975년 10월 1일 종로구로 편입되었다.
구텃굴은 무엇에 대한 구터인지 그 연원을 확인할 수 없지만 구기동을 이루고 있는 자연촌락 가운데서 "구터"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구기동의 자연촌락으로는 가늘굴·먹정굴·문수동·매박굴·독박굴·구텃굴이있다.
가는굴은 세곡이라 하며 가늘고 길게 들어간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매박굴은 구기동을 이룬 자연촌락 중 비교적 큰 마을인데 매바위가 있으므로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응암(鷹岩)이라고도 한다.
먹정굴은 구기동에서 불광동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구기터널이 뚫린 근방인데 산성(山城)의 암문(暗門)이 있고 검은 바위가 있어서 박쥐가 많으므로 먹정굴이라 하였다.
문수동(文殊洞)은 문수사(文殊寺)가 있는 매바위에서 거북바위 오른쪽 등에 걸친 수구 안쪽을 이루는 마을이다.
숙종 41년에 탕춘대성을 쌓을 때 좌의정 이이명(李 命)이 "탕춘대성은 너무 넓어서 수비하기가 어려우니 차라리 문수동의 어귀를 막는 것이 성(城)을 쌓기도 편리하고 지키기도 용이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탕춘대성을 중심으로 성을 쌓았다.
구기동은 종로구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동으로 동쪽은 평창동, 서쪽은 서대문구 홍제동, 남쪽으로 홍지동과 부암동을 경계로 하는 비교적 면적이 넓은 동으로 북한산 국립공원 구역권이므로 고적과 관련된 곳이 많다. 특히 승가사 문수암과 같은 사찰을 비롯,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의 비봉에서 사천(沙川)의 홍지문에 이르는 탕춘대성이 구기동과 홍은동, 불광동과의 경계를 이루며 남아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문수사
승가사
승가사 석조 승가대사상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유지
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성
구기터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