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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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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능동 능동 동명은 1904년 11월에 순종의 순명황후 민씨의 묘역인 裕康園(裕陵)이 마련되어 능말・능리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능동은 조선시대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하였으며,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에 편입되어 한성부 南署 두모방(성외) 전곶계 능동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를 5부 36방, 성외를 8面으로 할 때 경성부 두모면 능동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능리가 되었다. 광복 후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에 의해 서울특별시에 편입될 때 성동구 능리가 되었으며, 1950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에 의해 서울특별시 성동구 능동이 되었다. 1995..
2. 논현동 논현동 동명은 좌우에 논밭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로 높은 고개가 있어서 이 고개를 논고개, 한자명으로 논현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논현동은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논현동(논고개 아래의 자연마을인 부처말・비말・절골・정산・언구비 마을을 포함)이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광주군 언주면 논현리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할 아래 논현동이 되고, 1973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780호로 언주출장소가 폐지되고 영동출장소가 신설됨에 따라 논현동도 이의 관할 아래 있었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성동구로부터 강남구가 분리 신설될 때 강남구에 편입되었..
3. 녹번동 녹번동 동명은 녹번현(녹번이고개)에서 유래되었다. 녹번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청렴한 조정의 관리들이 설・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이곳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라에서 받은 祿의 일부를 이 고개에다 남몰래 슬며시 놓아두었는데, 이를 당시 사람들이 관리가 녹을 버린 것이라 생각하고 이 고개 이름을 ‘녹을 버린 고개’라 하여 ‘녹번이고개’라 불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녹번현은 본래 綠樊峴(綠礬峴)인데, 이 고개 부근에서 自然銅의 일종으로 푸른빛을 띠는 광물질인 山骨(生骨)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고, 숲이 우거져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운 지대였으므로 녹번현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녹번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
1. 노량진동 노량진동 동명은 白鷺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수양버들이 울창하여 노들나루라 하였다고 한다. 노량진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하북면 신촌분리・옹점리・옹막리・고등리 지역이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로 칭하였다. 그 후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해 경성부에 편입되어 경성부 노량진정이 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영등포구에 속하였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영등포구 노량진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호로 영등포구에서 관악구를 분리 신설..
3. 노고산동 노고산동 동명은 이곳에 있는 老姑山에서 유래되었으며, 老姑山의 원래 표기는 老古山이었다. 노고산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북부 연희방(성외) 아현계였으며,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희방(성외) 아현4계 노고산・세석리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개편함에 따라 경성부 연희면 노고산리・세석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는 경기도령 제3호로 노고산리와 세석리를 합쳐 고양군 연희면 노고산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구역이 확장이 될 때 경성부 노고산정이 되었으며,..
2. 냉천동 냉천동 동명은 마을 여기저기에서 찬 샘물이 솟아난 데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毋岳의 지맥인 金華山 기슭 여기저기서 약수가 많이 솟아나던 곳이고, 더욱이 京畿中軍營 앞에는 찬 샘물이 있어서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곳이다. 냉천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西部 盤松坊 池下契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西署 반송방 지하계 李判洞・冷洞이라 하였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서부 반송방 냉동・이판동이라 하였다가,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경성부 냉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내의 町・洞・里와 같은 명칭을 모두 町으로 바꿀 때 냉동은 냉천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5. 내발산동 내발산동 동명은 이 마을의 主山인 壽命山의 모습이 주발처럼 생겼으므로 鉢山이라 부르고 그 발산의 안쪽으로 형성된 마을인 데서 유래되었다. 내발산동은 조선 초기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으로 되었으며,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가곡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천군은 김포군・통진군과 합하여 김포군이 되었고, 양천군 가곡면의 원당리와 내발산리를 합하여 김포군 양서면 내발산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역..
1. 내곡동 내곡동 동명은 옛 언주면의 일부로서 마을의 제일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안골・안말로 불리고, 한자명으로 내곡동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내곡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안골・내곡동으로 칭하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안골・능안말・구석말・양지말을 병합하여 광주군 언주면 내곡리라 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내곡동이 되면서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780호로 신설된 영동출장소 관할이 되었고, 1975년 10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7816호로 성동구에서 분리・신설된 강남구에 이속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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