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beat Project (587) 썸네일형 리스트형 1. 망우동 망우동 동명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의 경계가 되는 곳에 있는 망우고개에서 유래되었다. 망우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 양주군 망우리면에 속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는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養源里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과 4월에 경기도 각면의 명칭과 구역을 정할 때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가 되어 변동 없이 내려왔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동대문구에 소속 되어 망우동이 되었으며 1977년 9월 1일에는 망우동이 망우제1・2동으로 분동・신설되었다. 그 뒤 1980년 7월 1일에는 망우제2동을 망우제2・3동으로 분동・신설하였고 그후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에 의해 중랑구가 신설되자 망우동은 중랑구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8. 만리동 만리동1가 동명은 만리동 지역을 분할 관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리동 동명은 萬里峴 고개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만리재는 세종 때 문신 崔萬里가 살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리동1가는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했으며, 영조 이후에는 서부 반석방 약전계와 조전계 동산동(속칭 만리현)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서부 반석방의 중동과 동산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봉래정3정목이라 하였으며, 1943년 6월 10일 府令 제163호로 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서대문구 봉래정3정목으로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봉래정3정목은 만리재의 이름을 따서 만리동1가로 하였으며,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 8. 마포동 마포동 동명은 우리말 ‘삼개’로 불리어지는 포구 이름을 한자명으로 ‘마포’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마포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영역 안에 포함되어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마포계?옹리상계?옹리중계?옹리하계 지역이었으며,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마포계?옹리상계?옹리중계?옹리하계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마포가 되었고,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와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경성부의 5부 8면제를 폐지하면서 마포 일부는 도화동으로 다른 일부는 마포동으로 하였다. 동년 9월 27일 경.. 3. 마천동 마천동 동명은 이 지역에 있는 馬山의 이름을 따서 馬川里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조선시대 林慶業 장군이 마산을 지나다가 백마를 얻어 말에게 물을 먹인 백마물이란 곳이 있는데,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이 계속 나와 馬泉이라 하였으며 후에 馬川으로 변한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천동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의 일부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일대 돌무더기・가운데말・아랫말을 병합하여 광주군 중대면 마천리로 칭하였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마천동이 되었다. 그 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성.. 3. 마장동 마장동 동명은 이곳 일대에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던 목마장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마장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동부 인창방(성외)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동부 인창방(성외) 마장리계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東署 인창방 동소문외계 마장리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를 5부 36방,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경성부 인창면 마장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마장리가 되었으며,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관할구역이 확장될 때 경성부 마장정이 되었다. 1943년 6.. 7. 마곡동 마곡동 동명은 옛날 이 일대에 삼〔麻〕을 많이 심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마곡동은 조선 초기까지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으로 되었으며,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군내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해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천군은 김포군・통진군과 합하여 김포군이 되었고, 양천군 군내면의 후포리와 마곡리를 합하여 김포군 양동면 마곡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역 확장으로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옛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 6. 등촌동 등촌동 동명은 이 마을의 지형이 산등성이로 구성되어 등마루라고 불려졌는데 이를 한자명으로 등촌동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등촌동은 조선 초기까지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으로 되었으며,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남산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천군은 김포군・통진군과 합하여 김포군이 되었고, 양천군 남산면의 등촌리 일부는 가양리에 합해지고 나머지는 김포군 양동면 등촌리로 칭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4. 둔촌동 둔촌동 동명은 고려 말 이곳에 은거했던 李集의 호 遁村에서 유래되었다. 둔촌동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광주목에 속하였으며,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한성부 11군 중 광주군에 속하였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 339군으로 개정하고 5등으로 구분하였는데, 둔촌동은 경기도 38군 중 1등에 해당되는 광주부에 소속되었으며, 1906년 10월 1일 칙령 제48호에 의해 광주부는 광주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 둔촌동은 광주군 龜川面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일대 약수터・굴바위・안둔굴・밖둔굴 등을 합하여 광주..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7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