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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근동 사근동 동명은 이 마을에 사근절〔沙斤寺〕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사근사는 현재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바로 밑에 있었다고 한다. 또 사근동의 ‘沙’자가 모래사자로 모래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사근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동부 인창방(성외)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東署 인창방(성외) 사근리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를 5부 36방,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경성부 인창면 사근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사근리가 되었으며,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관할구역이 확장될 때 경성부 사근정이 되었다. 1943년 ..
5. 사당동 사당동 동명은 옛날 큰 사당이 있던 마을인 데서 유래되었다. 사당동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사당리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일대 능마을・동산마을・양짓말 등을 병합하여 시흥군 신동면 사당리라 하였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영등포구 사당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호로 영등포구에서 관악구를 분리 신설할 때 관악구에 이속되었고,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로 관악구에서 동작구를 분구하면서 사당동은 동작구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서울지명사전 발췌) 1. 주요 지역 국립현충원 총신대학교
5. 불광동 불광동 동명은 이 근처에 바위와 대소 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있다고 해서 전해지는 데서 유래되었다. 불광동 지역에는 삼각산 자락을 중심으로 불광사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불광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은방(성외) 불광산계라 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은방(성외) 불광리계 불광리・박석동・사정동・관동, 갈현계 박석동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를 5부 36방으로,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경성부 은평면 불광리・사정동・관동・박석동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15. 북창동 북창동 동명은 조선시대 宣惠廳의 북쪽 창고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북창동은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호현방과 서부 양생방 일부 지역에 속하였으며, 영조 27년(1751)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남부 호현방 송현계・소공동계와 서부 양생방 태평관계・창동계・송현계 지역이었다. 그뒤 1894년 갑오개혁 뒤 전국의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한성부의 5部가 5署로 바뀔 때 남서 회현방 소공동계 소공동과 사축동・양동계 전교동・예빈동계 예빈동・송현계 송현동과 西署 양생방 창동계 창동・상동계 상동・태평동계 태평동 양동 전교로 나뉘어졌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한성부에서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이 되었고, 1914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 획정에 따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사축..
7. 북아현동 북아현동 동명은 애오개 즉 아현의 북쪽에 위치함으로 1914년에 이 지역이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면서 아현북리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아현동 동명은 애오개, 즉 아이고개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또 고갯마루가 높았기 때문에 ‘아이고’ 하면서 오르내렸다고 전해지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북아현동은 조선시대에는 마포구 아현동과 같이 도성 밖이지만 한성부의 관할구역이었으며, 안산의 한 지맥을 형성한 구릉 전체를 애오개라고 통칭하였다. 한성부 서부 반송방 아현계에 속하였다.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서부 반송방 아현계・북부 연희방 아현1계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반송방 아현계와 北署 연희방 아현1계..
6. 북가좌동 북가좌동 동명은 가좌동 지역을 분리 관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좌동 동명은 가재울이란 자연마을을 한자명으로 가좌동이라고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북가좌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 연희방(성외) 가좌동2계라 하였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성내를 5부 36방으로,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북가좌동은 경성부 연희면 가좌동2계라 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북가좌리로 변경되었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에 의해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북가좌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편입되어 북가좌동이 되어 은평출장소에서 행정을 담당하였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북가좌동 일부가 마포구로 편입되었다. (서울..
2. 봉천동 봉천동 동명은 이 마을이 관악산 북쪽 기슭에 있어서 관악산이 험하고 높아 마치 하늘을 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 데서 한자명으로 奉天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봉천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시흥군 동면과 과천군 하북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시흥군 동면 봉천리와 과천군 하북면 본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경기도 시흥군 동면 봉천리로 칭하였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시흥군 동면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될 때 봉천동이 되어 영등포구 관악출장소에 속하였다. 1968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491호로 관악출장소가 폐지되어 영등포구의 직할이 되었고, 1973..
14. 봉래동 봉래동1가 동명은 봉래동 지역을 분리 관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래동 동명은 淸日戰爭이 시작되기 전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마치 死地에 있던 상황이었으나 일본군이 들어와 만리창에 진을 설치하고 남대문 안에 들어가 일본거류민을 보호하자, 거류민들이 마치 지옥에서 신선이 사는 봉래산으로 옮겨온 느낌이었기 때문에 남대문 밖 마을을 봉래정이라 이름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봉래동1가는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했으며, 영조 27년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서부 반석방 고순청계 연지계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한성부 西署 반석방 고순청계 순동・자암동, 연지계 매동・분동・남정동・연지동이었으며, 1895년 8월 4일에는 한성부 서부 반석방 고순청계・연지계 일대였다. 1910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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