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ffbeat Explorer/16. 구로구

(7)
5. 궁동 궁동 동명은 조선 선조의 일곱 번째 딸 貞善翁主가 이곳에 살던 吉城君 權大任에게 출가하여 궁궐 같은 큰집에서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궁동은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 水呑面 宮里였으며,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인천부 부평군 수탄면이 되었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로 나눌 때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부평군이 인천군(府內面과 多所面을 인천부로 하고 남은 지역)과 합하여 부천군이 되고, 부평군 수탄면 궁리를 부천군 계남면 궁리로 칭하였다. 1931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05호로 계남면이 소사면으로 바뀌었고, 1941년 10월 1일 ..
4. 구로동 구로동 동명은 옛날 이곳에서 노인 아홉 사람이 오랫동안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중국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 白居易가 洛陽 龍門山 동쪽에 石樓를 짓고 시인 8명과 함께 시회인 ‘香山九老會’를 만들어 즐긴 것을 아름답게 여긴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구로동은 조선 초기까지 경기도 금천현 지역이었으며, 정조 19년(1795) 시흥현으로 바뀌어 상북면에 속하였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인천부 시흥군 상북면이 되었으며,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로 나눌 때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시흥군은 과천군과 안산군을 합하여 시흥군이..
3. 고척동 고척동 동명은 이곳 마을이 높은 곳에 생긴 마을로 高座里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또 이 동네는 경기도 부천과 안양・김포・강화 사람들이 서울 지역 사람들과 안양천을 경계로 생필품과 농산물을 교환하여 오던 곳으로서 당시 계량기가 없어 교환 측정 기준이 곤란하자 긴 자〔高尺〕로 재서 측정하던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高尺이라는 지명이 생기고 나서 한자명을 풀이한 데서 생긴 말이라고 볼 수 있어 앞의 유래가 더 유력하다. 고척동은 조선시대에는 富平都護府 水呑面 高座里였으며,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仁川府 부평군 수탄면이 되었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로 나눌 때 다시 경기도에 속하..
2. 개봉동 개봉동 동명은 경인선과 남부순환로가 교차하는 남쪽에 있었던 개웅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開雄의 ‘開’자와 양천구 신정동과 경계를 이루는 골봉재의 ‘峰’자를 합성한 것이다. 개봉동은 조선시대에는 富平都護府 葛灘이었으며,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仁川府 富平郡 水呑面이 되었으며, 그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부평군과 인천군(府內面과 多所面을 인천부로 하고 남은 지역)을 합하여 富川郡이 되었고, 부평군 水呑面 開峰里는 부천군 桂南面 開峰里로 칭하였다. 1931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05호에 의해 계남면이 素..
1. 가리봉동 가산디지털단지 인근이다. 가리봉동 동명은 이 마을 주위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마을이 되었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골〔谷〕 즉 고을과 같은 의미를 갖는 ‘갈’ 또는 ‘가리’ ‘갈라졌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리봉동은 조선 초기까지 경기 衿川縣 지역이었으며, 정조 19년(1795) 始興縣으로 바뀌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仁川府 始興郡 東面이 되었으며, 그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로 나눌 때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시흥군은 果川郡과 安山郡을 합하여 시흥군이 되었고, 시흥군 동면의 加里峰里는 그대로 시흥군 동..
구로구 개괄
7. 관철동 종각역에서 피아노 거리를 아우르는 블록으로 번화가를 말할 때 중심이 되는 지역이다. 관철동은 1914년 4월 1일 동명 개정에 따라 중부 장통방의 청포후동, 혁전후동, 염동, 동곡, 입동의 각 일부와 장교동, 관자동, 정자동을 병합하여 관자동(貫子洞)의 「관」자와 철물교(鐵物橋) 「철」자를 합하여 관철동이라 하였다. 관철동의 동명을 가져오게 한 관자동(貫子洞)은 금·옥·뿔·뼈로 망건 당줄을 꿰는 고리인 관자를 파는 전이 있어 관잣골 또는 한자명으로 관자동이라 하였다. 또 철물교(鐵物橋)는 종로2가 30번지 동남쪽에 있던 다리로 계동, 재동 방면의 물이 관훈동, 인사동을 거쳐 남쪽으로 흘러서 장통교(長通橋) 아래로 흘러 들어가는 중간으로 지금의 종로2가를 건너는 다리인데 통운교(通雲橋)라고도 하였다. 주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