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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 뒤쪽에 위치한 전농동은 조선초부터 농업을 중시한 관계로 국왕의 친경지였던 籍田(적전, 일명 典農)이
있었기 때문에 典農里라고 명명 되었다. 典農洞은 조선초에 한성부 東部 仁昌坊에 속하였으며 영조 27년(1751)에
도성 수어를 위해 반포한 『都城三門分界總錄』에 보면 한성부 동부 인창방 (城外) 典農里契로 나타나고 갑오개혁
때는 한성부 東署 仁昌防 (城外) 東小門契典農里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는 京城府 인창면 전농리로 칭하고 1914년 4월 1일 (경기도 고시 제7호)에는 경기도에
편입시켜 고양군 숭인면 전농리로 되었으나 1936년 4월 1일(총독부령 제8호) 경성부 확장때 편입되어 경성부
典農町(전농정)이 되었다. 1943년 4월 1일 區制 실시에 따라 東大門區에 속하였다. 광복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꿈에 따라 典農町은 典農洞으로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동의 명칭이 된 籍田은 왕이 친히
갈던 밭으로 텃골(톳구리)에 있었으며 이곳에는 典農의 일을 보던 泌芬閣(필분각)이 있었다. 이 밭에서 나온 곡식을
저장하였으므로 창마을(倉村, 創洞)이란 이름이 전해오며, 이 곡식은 종묘 제사에 사용하였다. 텃골, 창마을외에도
典農洞의 자연촌락명으로 샛밭, 활터밭, 창방재, 월촌, 성외동 등 7개가 있다.
(동대문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청량리역
서울시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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