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동과 신설동을 합쳐 용신동이 되었다.
* 유래 - 신설동
동대문구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신설동은 조선시대 동부숭신방(崇信坊)에 새로 설치한 마을이라 하여
신설계(新設契)라 하던 것을 갑오개혁 때 신설동(新設洞)이라 하였는데,
과거에는 이곳을「새말」또는「신리(新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동대문시립도서관일대를「우산각골(雨傘閣里)」또는「우선동(遇仙洞)」이라고 하였는데,
우산각(雨傘閣)이란 조선 세종때 우의정을 지낸 하정(夏亭) 유관(柳寬) 선생이 살던 집을 부르던 이름으로
하정(夏亭)선생은 비가 오는 날에는 방에서 우산(雨傘)을 받쳐들고 비를 피했을 정도로
생활이 청렴(淸廉)하여 청백리(淸白吏)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숭인동 동묘(東廟) 동쪽에서부터 신설동 남쪽 청계천로 변에는
타원형으로 자리 잡은 경마장(競馬場)이 있었습니다.
경마장은 원래 용산(龍山) 이촌동(二村洞)에 있었으나 1925년 을축년(乙丑年) 대홍수 때 시설이 유실 되어
신설동 85번지 일대로 옮겨졌으며,
1928년부터 1954년 뚝섬으로 이전(移轉)할 때까지 경성경마장(京城競馬場)이란 이름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신설동에는「동대문도서관」「동대문우체국」「동대문등기소」등 공공기관과「우산각공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유래 - 용두동
왕산로(旺山路)와 하정로(夏亭路) 주변에 신설동과 경계하고 있는 용두동의 동명은 예전에 마을 뒷산의
산세(山勢)가 '용(龍)의 머리'와 같다하여「용머리」또는「용두리(龍頭里)」라고 불리었는데 연유합니다.
예전 이지역에는 홍릉천, 성북천, 정릉천 등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지나고 있어
물 맛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으며, 개울가에 형성된「홍릉내 빨래터」(전 오스카극장 자리)와
정릉내 빨래터(현 한솔동의보감 건물)는 널리 소문난 빨래터였으며,
왕산로 현 남성공업사 자리에 있었던「찬우물터」의 우물맛은 이가 시릴 정도로 차고 꿀맛 같아서
도성(都城)안으로 들어가는 길손들은 물론 성안의 사람들도 동대문(東大門)을 나와서 꼭 이 물을 마셨다고 합니다.
예전「동마장버스터미널」자리였던 용두동 39번지에는「동대문구청」신청사 가 자리하고 있으며,
용두동 64번지에는 「한의약전시관·문화관」이 자리 하고,
용두동 34번지일대 새로운 동대문구청사건너편에는「용두근린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동대문구청 홈페이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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