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서편 청운동 옆쪽으로 통인동과 자하문터널 중간에 있다.
신교동의 동명은 신교동 70번지 신교소방관 파출소와 궁정동 9번지 사이를 연결해주던 새 다리가 있었던 동(洞)이라 하여 이를 한자로 옮긴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지금은 이름뿐 복개시설로 인하여 다리의 형체를 볼 수는 없다.
경우궁(景祐宮)과 경복궁(景福宮)사이를 흐르던 냇가의 가장 북쪽에 위치했던 신교는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수선전도(首善全圖)」에도 표시가 되어 있으나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인왕산 아래 백운동에서 시작한 개천이 동남으로 흘러 자수궁교(慈壽宮橋)와 금청교(禁淸橋)를 지난다」라고만 표기되고 신교의 이름이 보이지 않으므로『한경지략』이 저술된 1830년부터 「대동지지」가 제작된 1864년 사이에 신교가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또 중종조의 문인 눌재(訥齋) 박상(朴詳)의 「청송당시(聽松堂詩)」의 「오가는 가교에는 외나무 건너놓였고, 허송하다 심은 버들 일만실이 드리웠네」라는 싯구가 말하는 것처럼, 옛날에 있어서 거의 성시(城市)와 떨어진 느낌조차 있다. 이 유심(幽深)한 지역에 정작 다리다운 이름있는 다리가 가설되지 않았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고종조, 이곳에 새 다리가 놓이고 동명도 이 다리의 가칭인 새다리 그대로 부르던 때에, 동리의 구역은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서 지금의 신교동 일원은 물론 청운동, 궁정동, 효자동 등의 지역이 「신교」라는 동 안에 포함되었다.
현재의 신교동은 북으로 청운동, 동쪽은 자하문 길을 경계로 궁정동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과 서쪽은 옥인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1959년 2월에 종로소방서 관할 신교소방관 파출소가 설치되어 화재예방과 소방관계 민원사항을 담당하고 있으며, 서울맹학교와 선희학교가 신교동의 약45%를 차지하고 그외 나머지는 주택가로 형성된 서울의 전형적인 북촌(北村)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발췌)
1. 주요 지역
선희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