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beat Explorer/5. 마포구 (10) 썸네일형 리스트형 9. 망원동 망원동 동명은 한강변의 명소인 望遠亭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망원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성외) 망원정1계・망원정2계・망원정3계로 하였다가,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희방(성외) 망원정계 월사동, 정자동계 정자동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망원동이 되었다가, 1914년에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망원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에 의해 경성부 행정구역이 확장될 때 경성부 망원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 8. 마포동 마포동 동명은 우리말 ‘삼개’로 불리어지는 포구 이름을 한자명으로 ‘마포’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마포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영역 안에 포함되어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마포계?옹리상계?옹리중계?옹리하계 지역이었으며,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마포계?옹리상계?옹리중계?옹리하계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마포가 되었고,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와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경성부의 5부 8면제를 폐지하면서 마포 일부는 도화동으로 다른 일부는 마포동으로 하였다. 동년 9월 27일 경.. 7. 동교동 동교동은 ‘잔다리’, 즉 細橋의 동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되었다. 잔다리 동쪽의 위쪽 마을이었으므로 ‘윗잔다리’ 또는 동세교리였다가, 동교동으로 이름 붙여졌다. 동교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북부 의통방(성외) 세교리계였으며, 고종 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성외) 세교리1계・세교리2계 지역이었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희방(성외) 세교1계 세교동, 세교2계 세교동・宮洞에 속하였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연희면 세교리2계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 6. 도화동 도화동 동명은 이곳에 복숭아나무가 많고 봄철이 되면 복사꽃이 피어 경치가 좋으므로 ‘복사골’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하였다. 도화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마포계?도화동계 지역이었으며,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마포계?도화동내계?도화동외계에 속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도화동계 외동?내동, 마포계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도화내동과 마포로 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 5. 대흥동 대흥동 동명은 독을 구워 파는 것을 업으로 삼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독막〔甕幕〕’ 또는 ‘독마을〔甕里〕’로 불리던 곳이 독막?동막 등으로 불리었는데 일제강점기 우리말의 의미를 모르는 일본인들에 의해 東幕下里로 되고, 후에 다시 이곳을 대흥정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대흥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옹리하계였고,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용산방(성외) 옹리하계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동막하계로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동막하리가 되었다. 1.. 4. 당인동 당인동 동명은 ‘댕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현재 당인리발전소 일대에 명나라 李如松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던 사실과 관련된다. 중국을 상징하여 부르는 唐나라를 따라 중국인을 당나라 사람, 즉 당인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이 부근의 양화나루터에 貢物을 나르는 배들이 드나들었으므로, 이 동리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왕래하였다고 하여 多人洞이라 한 것이 변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인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서부 서강방(성외) 당인리계로 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西署 서강방(성외) 당인리계 당인리로 칭하였다. 19.. 3. 노고산동 노고산동 동명은 이곳에 있는 老姑山에서 유래되었으며, 老姑山의 원래 표기는 老古山이었다. 노고산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북부 연희방(성외) 아현계였으며,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北署 연희방(성외) 아현4계 노고산・세석리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개편함에 따라 경성부 연희면 노고산리・세석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는 경기도령 제3호로 노고산리와 세석리를 합쳐 고양군 연희면 노고산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 구역이 확장이 될 때 경성부 노고산정이 되었으며,.. 2. 구수동 구수동 동명은 水鐵里에서 유래되었다. 수철이란 이름은 현 新水洞에 무쇠솥과 농기구 등을 만들던 공장이 있어 ‘무쇠막’ 또는 ‘무수막’이라 부른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에서 비롯된 구수철리를 후에 신수동과 구별해서 구수동이라 하였다. 구수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처음으로 한성부 관할이 되어 서부 서강방(성외) 舊水鐵里契라 하고,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도 같은 이름이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西署 서강방(성외) 구수철리계 구수철리가 되었다. 1911년 4월 1일에는 경기도령 제3호에 따라 경성부 서강면 구수철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