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 동명은 고려 말에 형조참의를 지낸 李養中이 조선 건국을 반대하여 이곳에 와서 숨어 살면서 벼슬 제의도 거절하는 굳은 절개를 지켜 주위로부터 덕이 높은 인물로 추앙받았던 데서 유래되었다. 또 조선시대 지명인 古多只洞이 음운변동으로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고덕동은 조선시대에 경기 廣州牧에 속하였으며,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전국이 23부 337군으로 개편될 때 한성부 11개 군 중 廣州郡에 속하였다.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 339군으로 개정하고 5등으로 구분하였는데, 고덕동은 경기도 38군 중 1등에 해당되는 廣州府에 소속되었으며, 1906년 10월 1일 칙령 제48호에 의해 광주부는 광주군으로 개칭되었는데, 고덕동은 광주군 龜川面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지역의 가재울・비석말・방죽말・동자골의 일부를 병합하여 경기도 광주군 九川面 고덕리가 되었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시에 편입되어 고덕동이 되었으며, 서울특별시조례 제276호로 설치된 성동구 천호출장소의 관할을 받게 되었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에 의해 성동구에서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이속되었으며, 197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로 천호출장소를 區로 승격시켜 강동구를 신설함에 따라 고덕동은 강동구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서울지명사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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