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의 행정 구역은 15개의 행정동으로 나눠서 관리되며, 면적은 9.96 km²이다. 서울 중구의 인구는 2018년 2분기를 기준으로 61,091 세대, 135,427명이다.
1943년 4월 1일 구제도 실시를 전제로 경성부 전역에 7개 사무소가 설치되어 중구지역에는 중앙사무소가 설치되었고, 동년 6월 10일 구제도가 실시되어 경성부 직할구역소로 중구(행정관청 명칭은 중구역소)가 설치되었다.[2] 이 때의 관할 구역은 북미창정, 남미창정, 장곡천정, 태평통1정목(丁目), 태평통2정목, 남대문통, 봉래정1정목, 봉래정2정목, 욱정(旭町)1정목·2정목·3정목, 장교정, 무교정, 다옥정, 명치정1정목·2정목, 남산정1정목·2정목·3정목, 영락정1정목·2정목, 본정1정목·2정목·3정목·4정목, 대화정(大和町) 1정목·2정목·3정목, 주정(鑄町), 일지출정(日之出町), 왜성대정(倭城臺町), 동사헌정(東四軒町), 서사헌정(西四軒町), 신정(新町), 화원정(花園町), 병목정(竝木町), 광희정(光熙町) 1정목·2정목, 초음정(初音町), 앵정정1정목·2정목, 황금정1정목(黃金町一丁目)·2정목·3정목·4정목·5정목·6정목·7정목, 주교정, 방산정, 입정정, 임정(林町), 약초정(若草町)이었다. 해방 이후 1946년 9월 28일 서울시는 서울시 헌장에 의해 경기도를 벗어나 도(道)와 같은 지위를 갖게 되어 서울시 중구로 승격되었으며 1946년 10월 1일 기존의 정(町)의 행정구역을 동(洞)으로 일괄 변경하였다.[3]
1970년 3월 17일 조선호텔은 지하 2층, 지상 18층 규모의 최신식 호텔을 새로 지어 개관하였다. 1971년 10월 18일부터 서울 시청 광장과 맞닿아 있는 화교 상가가 철거됐다. 한국화약이 소공동 땅을 화교로부터 매입하여 호텔부지를 확보하였다. 소공동 일대 도심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3년 한국화약은 소공동 부지 지하 3층, 지상 22층 짜리 호텔을 짓기 시작해 1976년 9월에 준공했다. 서울 도심부 재개발 사업 제1호 사업으로 플라자호텔이 탄생한 것이었다.
1975년 10월 1일 서대문구 서소문동 등과 성동구 황학동 등과 용산구 한남동 일부가 중구로 편입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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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현재 성곽 외부인 신당동, 황학동[7], 중림동[8] 등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한성부 성내(사대문안) 지역이었다. 즉 저 외곽동네를 빼면 중구 자체가 순수한 서울특별시 영역. 1943년 경성부에 7개 구를 설치하면서 신설되었으며, 현재의 중구 행정구역이 완성된 것은 1975년으로서 서대문구 정동[9], 서소문동, 의주로동, 충정로1가 및 성동구 신당동, 황학동 등을 편입하고 동자동을 용산구에 내주면서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식으로 지명이 개칭되었다가 환원된 지역[10]이 매우 많다. 특히 ~가 시리즈는 일본이 확립한 ~정목(丁目)에 정확히 대응한다. 을지로, 퇴계로와 충무로는 각각 黄金町[고가네마치](황금정), 本町[혼마치](본정)에 해당한다. 또한 이외에도 앵정정(사쿠라이쵸), 약초정(와카쿠사쵸) 등이 존재했다. 이는 중구, 종로구, 용산구, 마포구, 성동구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나무위키 발췌)